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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깽s Jul 07. 2021

당신에게 건네보는..

소견 하나.

초등학교 6학년, 우연히 보게 된 친구의 일기장을 보고 조금 충격을 먹었습니다. 친구는~했다 로 끝나기 마련일 일기에 ~했어요. 그렇지 않나요? 하고 반문의 글귀까지 적어놓은 겁니다.

“일기를 왜 이렇게 써?”

“난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선생님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건데”

놀랍게도 선생님은 싸인 옆에 [아 그랬구나 우리 미숙이는 그런 걸 좋아하나 보구나! 정말로 즐거웠겠는걸!] 하고 글귀를 남겨주셨지요. 13살의 제 눈에 그 짧은 글귀가 얼마나 신선하고 따뜻해 보였는지요!    

6-2반 담임선생님에게 저는 분명히 튀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다수의 구성원 중 한 명 이 아니었을까요. 그랬던 제가 드디어 선생님의 관심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줄곧 숙제로만 생각했던 일기를 정성을 담아 쓰기 시작했어요. 꼬박꼬박 존댓말로 바꿔가면서 말이에요. 선생님께 띄우는 저의 첫 편지였던 셈이지요.    

갑작스러운 저의 발랄함에 선생님은 당황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 한번 나눠본 적 없던 제가 일기장에서 선생님을 향해 조잘대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선생님도 분명히 놓치지 않으셨지요. 그래서 편지 끄트머리, 검 날인 옆에 지나치지 않고 짧게 한마디를 써주셨습니다. 정말 날아갈 것 같이 기뻤지요. 새와 날기 시합을 했어도 지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이나 말이에요.     

잘 웃지 않으셨고 입꼬리가 좀 내려가 있던 인상 탓 일수도 있겠지만 미인은 아니셨습니다. 얼굴은 하얀 편이었고 팔자주름이 깊었어요. 어깨에 닿아 찰랑거리는 머리에 잔 웨이브를 주고 갈색으로 염색한 헤어스타일을 일 년 내 유지하셨답니다. 키는 큰 편이었는데 드시는 게 어땠는지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잘 못 드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마르셨어요. 목소리는 나직하셨고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조용하게, 무엇보다 시선으로 제압하셨지요. 그런 선생님과 개인적 소통을 이룬 것이 저로서는 큰 업적이었습니다.    

따라 했다는 핀잔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친구에게는 은근한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두 번째 그의 일기장에서 그만 보지 말았어야 했을 것을 보고 말았답니다. 살가움 와 메마름의 차이. 문장에서 풍겨지는 풍부한 감정과 뜨악한 건조함이 묻어나는 차이를 말이에요. 일기를 쓰고 남은 빈 공간까지 정성 들여 써주신 여러 줄의 글들. 그것도 부족한 날이면 포스트잇까지 덧붙여 답신을 써주신 일기장을 친구는 뽐내듯 보여주었습니다. 일기장의 주인공은 우리 학급 회장이었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육성회의 간부급이었고 크게 관련은 없겠지만 외삼촌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셨다는 얘길 얼핏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친구의 일기장을 좀 보았다고 해서 원래대로 일기를 되돌려 쓰기엔 왠지 좀 멋쩍었어요. 일기는 숙제로서도 해야만 했으니까요. 결국 어떤 대답을 기다리는 희망이나 바람 없이 짧고 건조하게 써나갔답니다. 가끔 그때를 떠올립니다. 어렸던 제가 어른에게 준 첫 기회를 선생님이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선생님의 진심 어린 따스함이 전해졌다면 어땠을까요. 어떤 면에서든 제 성장과정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 작은 영향력은 지금의 나보다도 좀 더 나은 나로 성장시킬 원동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게 우리는 많은 경험들을 타인과 공유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고, 어느 날 누군가의 인생에 저도 모르게 개입하게 되는 때를 자주 맞이하게 되지요.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아도 상처로 기억되는 시간들도 분명히 있답니다. 물질이건 마음이건 작아서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답니다. 육아서적이 난무하고 아이들의 공부머리 키우는 방법들이 빼곡하게 적힌 책들과 정보들은 지천에 널렸지요. 아이를 키우는 집집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부족함 없이 키우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한 사람의 지혜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을까요. 어린 시절 낯선 것이 두려워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 늘 두려웠던, 그런 바람에 오래도록 봄이 싫었던 저와 비슷할 아이들은 여전히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봄의 기운과 따스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옛날 선생님 한 분이 어린 제자 하나를 잃게 되는 바람에 제가 봄을 배워온 시간들은 길고 서툴렀습니다. 봄에 땅을 잘 다져 놔야 다음 계절에 푸르름을 빛내고 잘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전해진 관심과 마음들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답니다. 진심 하나에 밭을 만들고 뿌리내리며 아이들은 성장한답니다. 사랑은 꼭 혈육으로 이어진 내리사랑이거나 연인들만의 사랑에 국한되지는 않지요. 마음 밭에 뿌린 사랑의 씨앗이 채 성장도 하기 전에 땅이 굳어 싹조차 움트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른 된 우리가 먼저 알아볼 수 있다면 좋을지도요. 다양하고 따뜻한 숱한 경험들을 이어온 우리들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로 이어졌을 때, 그것들이 정말 귀한 선물이 되는 일들을 당신과 같이 알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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