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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깽s Jul 03. 2021

나의 미니멀라이프

소박한 삶에 대하여

언젠가부터 싱크대 위에 놓여둔 잡동사니들이 신경 쓰였다.

좀 편해보자고 두서없이 손이 닿는 곳곳에 쌓아둔 물건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부담은 어느덧 불편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 해방되기 시작한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노려 정리하고 들춰내어 버리고 버릴 결단이 서지 않는 것들은 감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전투적으로.

멀쩡한 것들을 버리고 유행하는 아이템들을 새로 들이면서 미니멀의 핑계가 필요했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쓸만한 것들을 버린 후 후회로 다시 새것을 들인 일화들을 소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반드시 버려야 사거나 소비 이후엔 무언가 버려야 직성이 풀린다던 사람들의 태도에선 잠깐 강박을 느끼기도 했다.

일종에 회의랄까...

과감히 카페를 탈퇴했다.

굳이 어떤 것들을 흉내 내고 내 몸에 맞지 않게 옷을 입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미니멀 라이프. 그냥 내가 선을 정하면 그만이었다.

팬트리마다 남는 공간 없이 꽉꽉 채우거나 요즘 유행하는 미니 슈퍼를 만들 수도 있다.

보기에 좋은 통일된 바스켓들을 크기별로 구입해 수납의 신처럼 적재적소에 숨길 수도 있다.

대량 판매하는 물건들을 조금 싸게 구입해 쟁여놓고 사는 것이므로 사치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내가 처음 미니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잦은 건망증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기억해야 할 물건들이 많아지면 장소를 기억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지나침들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 활용하지 못해 또다시 소비하는 일들만은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소비 자체가 나쁘다며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오래되었어도 새것과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비록 어제 새로 산 물건이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그 소비가 꽤나 적절했으면 그걸로 된 거다.

강박에 스스로를 가두고

폐쓰레기들을 무분별하게 생산하며

보기에 좋아 보이는 남의 인생을 따라 하는 것은

단언컨대 미니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글을 써볼까 꽤 오랜 기간 고민을 했다.

한참을 등한시했던 블로그의 먼지를 털어내고 쉽지 않은 인스타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간을 보았다.

그사이 나도 잠깐, 타인들의 화려한 삶에 군침이 흘렀다.

과장된 광고들과 반짝이는 무엇들이 혼을 쏙 빼내었다.

더 이상 광고로 도배된 블로그도 인스타도 내가 글을 쓰기에 적당한 플랫폼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다 만난 여기가 내겐 소박해서 좋다.

블로그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인스타처럼 과장되지도 않아 보여

여기라면, 안심하고 글을 써 볼 수 있겠다.

간결한 소망이 이렇게 닿았다.

생각해보면 미니멀의 흐름들로 이렇게 다시 나로서 일어서는 시간들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미니멀이란...

나를 다시 일으키는 과정과도 닿아있다.

결코 따라 해서 따라잡을 수 없는 각자의 시간들이 닿아있다.

그러니 나답게..

남에 눈에 좀 부족해도 내게 딱 그만인 데로.

심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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