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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깽s Jul 03. 2021

꿈이 불러온 대화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채 큰아이가 내달려와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나 무서운 꿈 꿨어!”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더듬어 끌어안고 잠을 다시 청해보려는데 아이가 서럽게 울면서 방금 꾼 꿈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리를 다쳐서 못 움직이고 쓰러져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보고도 그냥 가버리는 거야, 무서워서 막 울고 있는데 호랑이가 나와서 날 잡아먹으려고 했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서야 아이는 이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빛이 잠든 아이의 말간 얼굴을 훑고 있었다. 뒤숭숭함에 결국 선잠까지 뺏기고 말았다.

아이는 아침 식탁 자리에서 제 동생과 내게 꿈이 얼마나 무서웠는지에 대해 또다시 이야기를 했다. 생각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지 아이의 그렁해지는 눈을 바라보며 참았던 한 소릴 했다.

“엄마도 어렸을 때 무서운 꿈 많이 꿨어 그런데 그때 엄마는 달려가 안길 엄마가 안 계셨어. 늘 바쁘셨거든 너는 무서울 때 안길 엄마가 여기에 있잖아. 엄마가 다 이겨! 이제 됐지?”

 “엄마.... 어떻게 참았어 엄청 무서웠겠다.”

 무서웠겠다니... 눈에 눈물을 가득 모은 채로 아이가 나를 올려 다 보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아이의 작은 눈에서 웅크려 들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는 것 같아 왈칵 눈물이 머금어졌다.

별걸 다 닮고야 만다.


어렸을 때부터 가위에 자주 눌렸다.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기보다 여느 아이들과 비슷한 호기심이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나눈 호기심이 그런 식으로 동심에 파고드는 건 줄 만 알았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혼자 방을 쓰게 된 어느 날부터 성인이 되고 그 집을 떠나기 전까지 너무 많은 꿈을 꿨다.

언제나 사력을 다해 달려야 했던 꿈속의 내가 있었다. 그런데 정말 클라이맥스는 생생하게 몸을 옥죄는 공포였다. 그것은  꿈과는 다른 차원의 공포였다. 그러나 결국 그것도 꿈이라고 했다. 꿈 하나 때문에 바쁜 누군가를 귀찮게 하는 것이 내 생각에도 영 마뜩지 않았기에 할 수없이 참았고 겪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말대로 키가 크려고 그러나 보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밤이 너무 자주 찾아왔으므로 자주 겁을 냈고 귀신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을 키 가 큰 어른이 되고만 싶었다.

꿈을 자주 꾸는 아이를 보면서도 설마 하니 그런 걸 닮겠느냐 싶어서 불안의 눈길로 훑곤 했었는데...

그날 아침, 오랜만에 꿈을 핑계 삼아 엄마와 전화로 긴 수다를 떨었다.

“엄마 나 성남 살 때 가위 자주 눌렸었잖아 근데 그거 알았어?”

“어머 그랬니? 세상에 엄마도 그 집에서 유난히 가위눌렸었는데 웬일이라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엄마의 고백을 곱씹은 후 조금 혼란스러웠다. 당신 자식들 돌아볼 세도 없이 바빴고 대가족을 책임지던 당찬 엄마가 무언가에 시달렸다는 것이 영 엄마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가위에 눌리는 것은 들어 안다 면서도 내가 그런 줄은 몰랐다고 했다.

가족이라면 으레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당연히 있는 줄로만 알았다. 내가 호들갑 떨지 않아도 엄마가 당연히 알고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았기에 몰랐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언제나 바빴던 부모님에게 꿈 타령으로 푸념을 하기 멋쩍은 바람에 하지 못한 숱한 나의 말들은 지금껏 방황했다.

감정에 솔직한 큰 아이는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슬프거나 속이 상할 때는 말하지 않아도 눈에서부터 흐르는 것이 말이 되어버리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자꾸만 더 솔직하게 얘길 하라며 다그쳤다.  

참아내는 것이 익숙해지면서부터는 ‘내 기분 따위 내 감정 따위? 내가 좀 참으면 모든 게 더 나아질 거니까. 그럼 되는 거지 하고 내 빗장을 더 꽉 잠갔는지도 모르겠다. 무서웠을 텐데 어떻게 버텼냐며 연민으로 눈물을 머금은 채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아이. 자기감정에 너무 솔직해 나를 종종 당황스럽게 하는 아이에게 나는 도대체 어떤 말들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숨길 줄도 알아야지!

참아야지! 늘 그런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넌 호들갑이니 왜 허구한 날 눈물바람인 거니!

입술 뒤에 숨긴 이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예전에 내게는 소통이란 것이 부끄럽게 몸을 말고 있었다. 그것이 친구들 사이에서 나누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건 줄 몰랐다. 가족끼리의 소통이라는 것이 그 시절엔 마치 사치를 부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 그것을 나누기 위해 부러 수다스러워 지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놓치고 말았다. 엄마와 나와 아이 사이에 흐르는 그 비슷한 조짐들을 알아보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것들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었어야 했다.


“엄마 나 꿈꿨어. 너무 무서웠어!”

아직 키가 작고 어린 내가 있다.

몸을 웅크려 작은 등을 가만가만 토닥여본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제야 듣지 못해 본 말을 조용히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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