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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깽s Jul 03. 2021

너와 내가 마주했던 날들

같은 반이었지만 너를 제대로 본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집 앞 독서실을 등록하면서였어. 알고 보니 겨우 사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들의 집이 이어져 있었지. 생각보다 가까웠던 거리에 우리는 그제야 발견한 친밀감과 유대감을 얼마나 오래도록 만끽했는지.

너는 개를 좋아한다고 했어. 오랫동안 키우던 개가 없어져 안타까운 이야기를 할 때면 내 마음도 덩달아 착잡해지곤 했지. 윤기가 나는 털에 점박이 모양이 있고 다리가 길다던 그 개가 늘 눈에 본 듯 선했다는 것을 너는 알까. 우연히 그런 개를 볼라치면 얼른 뛰어가 네게 말해주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금요일이면 꼭 천 원씩을 챙겨 나와 독서실 아래 펼쳐진 시장 속으로 섞여들던 기억은 언제고 웃음을 자아낸다. 이천 원을 가지고 떡볶이 일 인분과 어묵을 4개씩이나 사 먹으면서도 질리지가 않았지. 잊을 수 없던 떡볶이 국물의 비결이 사실은 떡보다 많이 들어간 다시다와 설탕인 것에 너무도 허망해 웃고 또 웃었던 시간들은 또 얼마나 명랑한지.

떡볶이만큼이나 우리가 좋아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만화였잖아. 다만 너는 만화책이었고 나는 만화영화였어. 만화책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내게 아직도 티브이 만화를 보느냐고 웃으며 핀잔하던 네가 떠올라. 하얀 피부에 깡마르고 키가 컸던 너는 자주 “귀엽다니까 너는!” 하고 말했지. 맑은 너의 얼굴에 피어오르던 장난꾸러기의 미소들은 천진했고 다정했다.

그때 우리에게 중요한 준비물이 있었던 걸 너라면 기억하겠지? 맞아 하얀색 기름종이였어. 책방에서 여러 권씩 빌려 일주일을 꼬박 서로 돌려보았는데도 반납일은 늘 아쉬웠지. 그래서 머릴 맞대고 그 기름종이들에 얼마나 많은 그림 들을 베껴 그렸는지 몰라. 독서실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이불들이 얇아 각자의 것 두 개를 겹쳐 깔고는 얇은 담요 하나씩을 몸에 둘렀잖아. 독서실 바닥의 찬기만 겨우 면해 배를 깔고 나란히 엎드려 열중하곤 했지. 그렇게 골똘한 모습들을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따라 그리는 건데도 네 그림이 언제나 더 예뻤다. 너는 그 그림들을 욕심 없이 내게 나누어 주었지. 그 얇은 종이가 행여 상할까 파일과 책 사이사이에 고이 모셔두었어. 그걸 버린 기억이 없는데도 남아있는 게 없다는 것이 때론 안타까워. 25년도 지난 일이라니 아득함에 속절없는 시간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만화책만큼이나 많았던 우리들의 종이에는 다양한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었지. 어쩌다 그림 한 면만 보아도 우리는 서로 입 아프게 줄거리를 나누며 끝나지 않을 수다를 나누었잖아.  

그 만화의 이름이 ‘오렌지 보이’인 탓도 있겠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껏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과일의 향을 떠올리곤 한다. 그때의 추억에서는 분명 오렌지 향기가 난다.

큰아이를 낳고 회사로 복귀한 어느 날 메신저로 네가 먼저 말을 걸어왔지. 너는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이었고 아이는 당분간 갖지 않기로 했다며 딩크를 선언했잖아. 딴에는 순리를 거스른다는 것이 쉬운 일 인가 가늠하느라 너와의 수다를 책상 언저리로 보내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때 네가 말했지

“중3 때 너 안 그랬는데 너무 많이 변했다”

‘변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것을 너는 알았을까? 순간 돌아보았지. 그러다 문득 억울해졌다.

‘나만 뭘 또 그리 많이 변했단 말인가. 그러면 자기는!’

일순 걷잡지 못한 내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고 메신저에 글로서 채워지고 있었다. 목소리로 전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지. 그러나 글에도 감정은 있다. 말로 목소리로 더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은 순전히 내 생각일 뿐. 네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막 5개월도 안된 젖먹이를 떼놓고 나와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친정엄마 호강은 못 시켜드릴 망정 아이 돌보미처럼 아침저녁 출퇴근시키는 못난 딸 역할에 나는 어느 정도 맥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딩크족임을 선언한 만큼 내가 느끼는 고민을 네가 알 턱이 없었을 것이며 나 역시 네 고민이란 것을 꽤 시시한 소리로 들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변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모두 서른 해 이상을 살아온 즈음이었고 중3에 비하면 꼬박 배의 시간을 산 셈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에 갔으며 서로 다른 전공들을 골라야 했고 마시지 못하는 술을 배워 마셔야 했던 때도 있었다. 오래도록 사귀었던 사람들과 정리가 필요한 시간들을 거쳤으며 이 사람이다 싶어 매달려도 보았다. 평생 붙어있을 것만 같던 네 작은언니가 시집을 갔고 내 자식 같던 동생이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버린 기억이 없는데도 흩어져버린 기름종이의 그림들처럼. 한밤중 담요 안에서의 소곤거림과 키득거림. 떡볶이 좌판 앞에서의 명랑한 웃음들도 긴 시간 동안 소리 없이 흩어져 오래도록 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그럴 것을 그랬다. 변한 것이 아니라 살아낸 것이라고. 살아내다 보니 그리된 것이라고 말하면 될 것을 뭐가 그리 변했냐고 감정까지 실어 몰아붙이지는 말걸.

작은 글 다툼이 있은 후 너와의 연락이 정말 드물게 되었다. 한동안은 그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아 힘겨웠던 적도 있었지. 그러나 시간이 이만큼 흐르고 보니 이제는 그런 응어리도 없어지고 오렌지 향기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빛바랜 사진들처럼.

너와 마주했던 그날들은 변하지 않고 추억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다. 그때의 우리는 만화책이면 즐거웠고 떡볶이면 족했잖아. 본 적도 없던 너의 개를 본 것처럼 내가 아꼈고 말이야. 그런데 살아내다 보니 삶을 채우는 충분 요소들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어 서글픈 것은 나뿐일까. 그때 우리가 그토록 골똘히, 충실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 서로가, 이미 서로인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네가 유난히 좋아하던 4월에 벚꽃이 내린다. 벚꽃이 반짝이는 창을 종이 삼아 너와의 추억들을 가만히 덧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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