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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깽s Jun 22. 2021

나는 참 어려운 사람

최근에 이사를 했다.

겨우 지하철로 두 정거장 차이지만 그 낯섬은 거리에 비례하지 않는구나.

나는 참 변화가 어려운 사람.

몇 날 며칠을 지근대는 맘으로 이사의 안부를 묻는 지인들에게 결국 눈물을 보이게 된 건 나였다.


처음 생소한 이 도시로 왔을 땐 어떤 마음으로 와서 살아냈을까.

교통이 참 쉽지 않았던 곳, 우리가 자리 잡은 첫겨울에 유래 없이 많은 눈이 내렸다.

그때 난 눈 덮인 섬에 갇힌 기분이었다.

새로운 도시에 좀처럼 정이 붙질 않았다.

그러다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게만 모진 것 같이 굴던 시간들도 다정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한동네 조카 같은 아이들의 성장을 공유하는 일은  감동이었다.

힘들고 고되던 그때 육아 품앗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나눴다. 그게 그것인 줄 정의하지도 않은 채.

가족 같은 사람들을 두정거장 아래에 두고 나만 뚝 떨어진다는 것이 또다시 섬이면 어쩌나 걱정했는지도.


나이를 먹는다고, 결혼을 했으므로, 또는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괜히 어른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때의 우리들은 아마도 서로 다르지 않았으리라.

친정식구나 남편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는, 말 그대로의 독박 육아 상태였던 그 시절.

서로의 고충들을 나누고 개선점을 찾아가고 특히 육아의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조언들을 주고받았었는지...

주고받음들을 통해  다듬어지고 성장했을 시간들은 치열했으나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된다.

그 시간들이 아마도 아직은 한참 부족했을 나를 어른으로 만든 것 같기도...


새론 온 동네에는 작은 호수공원이 있다. 주말마다 정해진 시간 동안에 음악분수가 가동되는 듯하다.

이사온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서걱서걱 낯이 설어 밖으로 나갈 일들을 만들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참에 음악분수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소화도 시킬 겸 주섬주섬 걸어 섰는데 이미 주말 저녁 산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적당히 자릴 잡고 앉았는데 첫곡이 틀어졌다.

아델의 some one like you. 그다음 곡은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 김동률의 그게 나야 의 멜로디를 따라 분수쇼가 이어졌다.

좀 묘한 기분으로 밤하늘의 분수를 보는데 난데없이 울컥.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 뒤로 숨었던 첫걸음이 내디뎌졌다.

소중한 것에서 멀어진다는 걱정이 지레 섬을 만들 필요는 이제 없을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문득 떠나온 것에 대한 실감.

새로 정 붙일 곳에 이런 작은 낭만이 다행이라는 실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호숫가의 밤, 아름다운 음악, 물빛을 감싸 안은 조명의 아름다움을 집 앞에서 나만 홀로 느끼는 것이 모든 것을 새삼스레 환기시켜주었다.


그 밤, 이제 더는 섬에 갇히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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