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곳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순전히 책 때문이었다. 글쓰기 수업이지만 독서토론도 겸한다고 했다.
토론을 해본 적이 있던가? 글쓰기는 또 어떻고 고작 일기 좀 써봤다는 것만 가지고 명함도 못내 밀 텐데..
한참 전 블로그에 책과 여행 리뷰를 간단히 소개하며 끄적거린 것이 내 글쓰기의 전부였다.
에잇,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주에 한번 있는 수업으로 그곳에 입문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 차다. 문우 중엔 내 어머니 연배 이상 되신 분들이 여러분 계시다. 그분들에게서 때때로 인생의 많은 훈화를 듣게 된다. 그것이 참이고 그것이 맛인 시간이었다. 책이 고팠던 어려서부터 늘 이야기에 목이 말랐다. 80년대생인 내가 60년 70년대 삶의 이야기를 어디서 이토록 생생히 들을 수 있을까.
운전면허증이 흔한 요즘과는 다르게 면허증만 소지했을 뿐인데도 신여성, 맹렬 여성이라고 소개받은 대목에서 얼마나 소리 내어 웃었는지. 부모님에 대한 반항의 심정으로 소꼬리에 불을 붙인 사연의 내막을 알기까지 숙연해지는 그런 마음들이 좋았다.
코로나 전, 드물게 야외수업을 가져 보기로 해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봄 가뭄이 길게 이어지더니 하필이면 예정된 수업 전날 비가 많이 왔다. 어렵게 잡은 수업 일정인지라 비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길고 끈덕지게 내렸던 비가 미세먼지를 한 끌도 남기지 않고 털어가 버렸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 파랬고, 가지마다 밤비의 훈장들은 빛이 되어 맺혔다. 연초록의 새순들이 하나, 둘 봄의 하늘로 고개를 내밀었다. 잦은 미세먼지와 황사로 깊숙이 내려앉은 회색의 먼지들도 기세 좋은 봄비 앞에선 맥을 못 차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금세 기분 좋고 떠들썩한 자리가 되었다. 저마다 싸가지고 온 갖가지 간식들을 풀어놓았다. 쿠키며 여러 가지 과일, 그리고 떡과 따끈한 커피가 봄의 상 앞에 차려졌다. 대낮에 벌이는 치킨 파티로 정점까지 찍었다. 야외수업을 핑계 삼아 다시 여고생이라도 된 기분이 되었다.
마침 꽃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던 터라 꽃들의 어여쁨을 뒤로 두고 하나둘씩 짝을 지어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연신 피어나는 미소와 웃음 곁으로 봄을 만끽했다. 비가 온 뒤인지라 공기가 제법 찼는데도 사진에 찍힌 우리의 모습에서는 찬기 하나 찾을 수 없이 따뜻한 미소들만 머물렀다.
열정에 나이가 중한 것이 아니란 듯이 열정적인 문우들을 볼 때 종종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처음이 오래 걸리는 내가 용기 내지 않고 이 좋은 경험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날이 좋았던 그날.
그 환한 웃음이 가당키나 하였을까.
새롭게 한편, 한편. 우리들의 글이 발표된다. 한때 그들이 지나온 숱한 어느 날들 중의 어떤 때 한 귀퉁이에 나도 서있다. 나는 그저 바람이고 나무이고 원래부터 거기에 있던 작은 조약돌이 된다. 하나의 시선이 되어 그들 곁에서 인생 한 자락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도 한때 아름답던 숱한 젊은 날들을 지나왔을 터였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들에 비하면 젊은 내 나이가 겸연쩍어지고 만다. 그러나 싱그럽던 그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외치면서 깔깔대던 때를 떠올려 보면 나이는 그저 허울 같은 그물에 불과한 것을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소풍을 떠났던 그날 아마 우리 모두는 비슷한 감정에 머물렀을 것이 빤했으니까.
어쩌면 눈이 부신 순간들은 과거나 화려했던 한때의 단편들에만 머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시,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그 환하게 좋았던 날씨가 아닌 우리들의 표정에서 눈이 부시다는 실감을 하고야 만다. 그들 곁에서 그저 스쳐 지나고 마는 하나의 시선이 아닌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