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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Jul 23. 2023

우리 아빠는 멋쟁이 사업가.

설명치 않고도 삶을 엮어내는 힘을 자녀에게 교수하는 법.

기억을 시작한 시점부터 나의 아빠는 줄곧 사업가였다.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도.

왼 손목 시계에는 번쩍 롤렉스, 오른 주먹에는 고급 가죽 비즈니스 가방, 출발 및 도착은 윗뚜껑 열리는 수입 차.... 와 같은, 기깔나게 성공스런 사업가 말.고.

전화를 주고 받을때 언성이 높아지고, 사업 영역은 못내 자주 바뀌고, 항상 재정난에 허덕이고, 집에 빨간 딱지가 붙네 어쩌네 하는 초콤 디피컬트한 사업가.

아빠는 무뚝뚝하고 권위적이며 무섭고 강한 사람이었다. 업체한테뿐 아니라 내게도 엄마에게도 그러했다.

(허나 이 와중에도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 아빠의 피지컬이란 태초부터 완성형 빛나는 사업가란 것.  키크고 풍채좋고 핸섬하고. 나는 뭐 아빠 닮았고. 후훗)



내 나이 몇살이었을까.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인가보다.

그 당시 나는 키만 멀뚝했지, 소심하고 소심하고 소심하고 소심했다.

수상쩍은 전화가 집에 걸려오는 것은 아닌지, 아빠를 바꿔드려야하는지 아닌지, 저 친구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이 길로 가는것이 맞는지 아닌지 그저 기가 죽어 헤매이던 시절.


그 날은 왠일인지 엄마와 내가 아빠 사무실을 방문했고, 동대문 허름한 건물 n층 사무실엔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각 잡힌 남자바지는 천장처럼 솟은 옷걸이에 꽤나 많이 걸려있었고, 한쪽 벽면 구석에는 다양한 색감을 자랑하는 비니 모자들이 쌓여있었다.  다른 종류의 물건들도 분명히 있었을 터인데, 딱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에게 강제 삭제 당한건지, 세월이 삭제해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무실 구경이 슴슴하게 끝나고, 엄마와 나는 먼저 나와 차 안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연휴를 앞둔 때였다. 차 창문 너머로 멀찌감치 아빠가 보였다.

검회색 양복 차림이었고 넥타이가 바람에 살짝 들렸던 것도 같다.

 

아빠는 사무실 건물의 경비원으로 보이는 분께 무심히 흰색 돈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 왼쪽으로 슬쩍씩 들려지는 넥타이와 함께 두벅두벅 걸어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부웅. 우린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서른아홉 지금에도 가만 그 장면을 가져와 내 앞에 띄워놓으면 또 코끝이 아린다.

아빠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난 그 때 아빠에게서 어떠한 것을 진하고 짙게 배웠다.

내가 굳이 꺼내지 않았기에, 아빠는 딸이 목격한 당시의 정황을 아직도 모를걸.


어렵고 아려도

분명 더 어렵고 아린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것.  

그리고 결국 그 누군가에 대한 무언가를 doing하는 것.



삶의 길목들에서 사회복지학을 선택하고 비영리기구서의 20대 청춘을 보내다가 음악치료학으로 흘러온것은 아마도 아빠가 보여준 장면과 무관하지는 않을 터.  

지금도 끝날듯 끝나지 않고 아스라질듯 아스라지지 않는 사업을 이어가는 아빠의 형국이지만

그리고 나는 이제 시집와 일일이 붙어있지 못해 알 턱 없지만

분명 아빠는 누군가에게 어디에선가 또 무언가를 내밀고 있을게다.


설명치 않고도 삶을 엮어내는 힘을 자녀에게 교수하는 것.

나도 기꺼이 해내고픈, 그야말로 푸른빛의 소망.


(maybe) 할아버지에게서 아빠로

아빠에게서 나로

나에서 딸들에게로

딸들에게서 그들의 자녀에게로

그리고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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