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악치료사 이원지 Sep 07. 2023

#장례희망_이찬혁

제목부터 센스만점. 그가"희망"하는 장"례" 장면들에 관하여.

희한하게도 난 꼬꼬마 시절, 화장실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올라가 꽤 오랜동안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곤 했다. 그때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했다. 지금 내 몸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그 다음 세계는 끝없이 이어진다는데, 마지막이란 개념이 없이 (어떤 형태일지 모를)내가 계속 지속된다..는 그 느낌이 굉장히 신비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를 그리는 장소로 변기 뚜껑 위를 선택했던 것은, 어린 내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 다시 말해 하늘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추리했기 때문이고. 후훗. 돌아보니 귀엽군. 10살 이원지는 나름 상상세계의 영역이 깊었어.



악동뮤지션의 오빠 역할을 담당하는 이찬혁은 22년, 본인의 이름만으로 솔로 첫 앨범을 냈다. (22년 10월, ERROR). 1번부터 11번 트랙까지 하나의 서사로 이루어진 이 앨범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고, 본인이 희망하는 장례식 장면을 노래로 그리며 마무리된다.   

<장례희망>. 이 제목을 처음 접하고는, 찬혁의 언어적 센스와 재치에 대해 다시 한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나 또한 늘 생각해왔던 주제이기에 투머치 반갑고 고마웠다. 대체 그는 본인이 희망하는 스스로의 장례 장면에 대해 어떻게 표현했을까..... 설레는 마음 한가득 안고 집중하여 청취 시작.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게 신기해/...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오자마자 내 몸집의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위의 단어들로는 표현못해 사진을 못보내는게 아쉽네/ 모두 여기서 다시 볼거라는 확신이 있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치며 외치세


나의 마음에 아주 흡족하고 기쁘고 즐거운 문장이 있었으니, "사진을 못보내는게 아쉽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사자와 친구가 된 찬혁. 사자와도 한컷, 여러 황홀한 전경들에도 반해 셔터를 눌러댔을텐데. 그걸 땅위의 사람들에게 보내지 못하니 아쉽고 아쉬울밖에.


나로 인하여 아는 얼굴들이 다 모여있는데, 정작 아는 척을 하지 못하는 심정은 어떠려나. 영의 세계에서도 영혼들 삼삼오오 모여 본인의 사망썰을 수다할지도. 장례식에서 축하 파티를 열고싶다는 그는 분명 내세를 확신하고 있을게다. 죽음 뒤에 펼쳐지는 Part2는 천국일 것이라 확신하는 사람의 사망 후 첫마디, "할렐루야."


그곳의 문을 열자 트럼펫 부는 천사들이 등장, 그야말로 환영의 축하 파티가 시작되었으니 이곳저곳에서 샴페인도 터진다. 온갖 세션과 함께 그곳에 먼저 있던 수많은 무리가 손뼉을 치며 그를 맞으면서 이 홀리하고 화려한 선율이 시작되는거다.(이건 내 상상 이미지.^^)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치며 외치세.” 이 부분은 정말 들어보셔야. 메이저와 마이너를 어쩜 이렇게 자연스레 넘나들며 웅장하게 표현하는지. 자칫하면 뻔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 될뻔한 것을 마이너가 극적으로 살려냈다.


2절의 가사를 접하며 난 비로소 그의 나이를 실감하는데, 찬혁은 본인의 장례식장에서 과하게 우는 그녀를 발견하곤 묘한 시그널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그와 나의 걸어온 시간 차이를 느낀다. 28년을 살아온 건장한 미혼 청년은 썸 중이었던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짠하지만, 만약 그보다 10년 20년 훌쩍 더 많은 삶을 살아낸 기혼 여성 혹은 남성이라면, 과연 미묘한 시그널이 있었던 누군가에게서 가사가 끝났을리 만무하기 때문. 더욱 절절하겠지. 절절을 넘어 쓰라리고 아프겠지.  남겨둔 가족, 혹여나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더욱...

가사에는 가사를 쓴 이의 철학과 생각, 그리고 나이와 연륜이 묻어나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그의 10년 후, 20년 후의 장례희망 가사에는 어떤 화자가 등장할까. 고로 어릴때부터 활동하는 누군가(내 맘에 들어온)와 동시대를 살아가는것은 행복한 일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의 깊이와 넓이를 함께 확인할 수 있기에.

  


서른아홉을 살아가는 현재의 나는 아직 장례식의 면면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진 못하였고, 죽음이 임박했을 그 때 내 귓가에 들려주었으면 하는 플레이리스트들은 가지고 있다. 딸들에게 바라는건 그것 하나. 병실 혹은 집의 베드에서 내 리스트만 on해다오. 난 늘 잔잔한 곡들만을 그려왔으나 이 곡을 계기로 기쁨의 선율을  포함시키련다. <장례희망>. 나의 웰다잉 플레이리스트에 한곡 추가.!


https://youtu.be/7VpH_eTtDpM?si=eoEUIOLtARSCXv7p

 

 

 

매거진의 이전글 #주룩주룩 참방참방_꼬마버스 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