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바람_존박
바람에 생각나요
날 항상 감싸줬던
따뜻한 그녀의 품 속이
오늘 참 그리워요
매서운 파도에도
흔들림 없던 사람이
철없는 아이처럼
수줍게 나를 바라보네요
모두가 그렇듯이
그녀도 시들었죠
짓궂게 흐르는 시간이
너무 원망스럽죠
하지만 그녀가 웃네요
그리고 내게 말해요
더 이상 힘들게 만드는 나는 이제 없을거라고
그녀의 얼굴은 웃어도
눈 속에 눈물이 말해요
언젠가 너도 내 마음을 헤아릴 때 만날거라고
바람에 생각나요
날 항상 감싸줬던
따뜻한 그녀의 품 속이
오늘 참 그리워요
[오늘바람_존박]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를 보며 만든 곡>
나의 할머니는 무겁고 퍽퍽한 세월을 살아내다 신체 좌측으로 풍을 맞았다. 팔이 안으로 말리고 다리는 어설프게 절뚝이며, 지팡이를 짚어야만 하는 노년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어여쁜 엄마를 낳아준 어여쁜 할머니는 하얀색 얇은 머리칼을 늘 단정하게 빗어넘기는 고운 할머니였다.
막 중학교에 올라가 제 몸보다 훨씬 커다란 회색 교복을 입고 회색빛 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나는, 학교와 집을 어떻게 오가는지도 잘 모르는, 어벙하고 소심하며 키만 훌렁 커 버린 소녀였다. 청파동 반지하 우리집은 고불한 골목길 안에 있었고, 학교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복작하며 어려웠다.
할머니는 우리집 바로 옆 구멍가게 앞에 의자 한 개를 놓고, 거기서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 터벅이 하교하는 나를 기다려 주었다. 집 안에 굴러다니는 화려한 무늬의 캡모자를 아무렇게나 쓰고, 쨍하디 쨍한 새빨강 양말을 정강이까지 올려 신고는, 나무 지팡이를 낡은 의자 옆에 세워둔 채로 그렇게 길치 어벙이 손녀만을 기다려 주었다. 먼 발치에서 작게 할머니가 보이면 반가움과 안도감이 찾아왔고, 할머니가 가게 앞에 앉아있던 그 컷은 옷차림과 표정, 그리고 옆 풍경까지 완벽히 선명하게 내 기억 안에 있다.
할머니는 왜 그렇게 나를 기다렸을까.
아직 아이같은 손녀가 행여나 집을 잘 찾아올까 염려되었던 걸까.
몸 불편한 노인의 넘쳐흐르는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나름의 명백하고 정당한 일과는 아니었을까.
모두가 그렇듯이
그녀도 시들었죠
어느새 나는 그 할머니를 모시던 엄마의 나이가 되어 간다.
나의 할머니가 시들었고, 나의 엄마가 시들어가고 있으며, 나 또한 시듦을 향하는 정직한 생의 흐름을 걷는다.
꽃의 사라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며 모든 꽃은 피고 지니, 이 흐름을 가만히 숙고하다보 결국, 그러하니 현재를 더욱이 사랑하자는 다소 평이하고도 나름 따스한 결론만이 둥 떠오른다.
바람에 생각나요
날 항상 감싸줬던
따뜻한 그녀의 품 속이
오늘 참 그리워요
.
허나 오늘은 그 결론에 하나 더 덧대고저, 주어진 현재를 사랑함에 애틋한 기억들을 더하기로 한다. 노래와 함께 나의 안에만 살아있는 그 기억과 더불어, 피어나고 떨어지는 현재의 사랑에게 사랑을 주고 또 받으면서, 불어오는 바람에 날 항상 감싸주었던 누군가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