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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배 Dec 13. 2024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91

나는 아무도 구독하지 않는다

Carl Randall

"PICCADILLY CIRCUS"details(2017)

Oil paint on canvas
230 x 106cm



나는 아무도 구독하지 않는다







수년 전





누군가를 응원하는 댓글을 달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내가 뭘 먹었는지

나도 별 궁금치 않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찾아와

함께 행복했





그러나 예술이란 게 그렇다





나 역시 내 피고름을 짜내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도

자신의 아픔을 굳이 들춰내

우리에게 보인다





그러나

그 아픔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위면 좋은데





문제는





적지 않은 수의 예술작품이

외설과 예술





그리고 폭력과 고통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 든다는데 있었다





나는 세계 각국의 작품을 소개했고





자연스럽게





의 인스타그램에는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그중엔 아름다운 작품을 하는 사람도





세인들 눈엔





저속하고 외설스러우며

가학적인 작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혼란도 잠시,





미술사 공부를 하며

예술가에게 작품은





그저 "자신의 삶을 띄워놓은

모니터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내게





각종 자극적이고 외설스러우며

가학적인 작품들은





작가대신 말곤 했다





"내 삶이 이만큼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노라"라고





지금도 세상 어딘가엔

어느 누군가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매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용기 있는 몇몇이





글로

또 그림으로 목소리를 낼 뿐





다수는 그저

땔감 마냥 빛없이 쓰여지곤

사라져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나의 사춘기 아들에게

"채식주의자" 읽기를 대학에 들어간 후로 권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채식주의자"가 나오던 해

나는 삼십 대였음에도 불구





그 세밀하게 온몸을 갉아먹는 듯한

벌레 같은 고통 기억에





나는 지금도 그 책을 다시 읽지 못한다





하물며 모든 게 미완

불안정한 사춘기 아들에게





온통 고통으로 점철된 작가의 언어

의도대로 전달어 옳게 작용할 수 있을까





작가 "한강"의 작품은

작가의 낯빛과도 같다





세상의 고통을 다 짊어진 듯한

그녀의 얼굴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글 화자들의 이야기에

온통 천착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장기간 후보에만 그치는 이유 중 하나건 아닐까





언젠가 방문했던 밀라노

프라다재단 미술관에서





미국의 개념미술가

키엔홀츠 Edward Kienholz의 전시를 보고

나는





장의사, 정신병원 간호사,

정수기 판매원, 중고차 딜러 등





자신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대로 녹여낸 작가의 적나라한 작품들에서





논란이 됐던 외설적 표현만큼이나 지난했던

작가 자신 삶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로 작품과 삶이 혼연일체 될 자신이 없어





그날 이후로 난,

예술가 되기를 포기했었다





작가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속옷을 벗는 사람들이다





상상도 건더기가 있어야 가능





고기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의 맛 형용은

금세 들통나 외면받기 마련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 그 어떤 폭력적이고 조악하

 외설스럽고 저급한 글들은





작가의 삶 자체의 현현으





오롯이 다 존중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 브런치의 수많은 작가들 중





과연 내가 그 가치를

함부로 가늠해도 되는 존재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고 무작정 모두를 안기엔

나는 너무 얕고 속물이다





그래서 난 자격이 없어





아무도 평가하지 않





고로  아무도





누구도 구독하지 않는다





'I Am Become Death' - Experimental Short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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