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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배 Dec 22. 2024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99

엄마는 몰랐음 싶다

Paige Jiyoung Moon(b. 1984, Seoul)

"Sol Jeane", (2014)

Acrylic on canvas.

8 x 8inches (20.3 x 20.3 cm)



엄마는 몰랐음 싶다







"쿵쾅!"





그의 아내는

"서랍 두 개가 쿵쾅 닫히는 소리"에

깨어났다고 회상했다.





수십 년 동안 총기 사고로 알려졌지만

이젠 자살임을 누구나 아는





전설적인 작가 헤밍웨이의 허망한 삶은

1961년 7월 3일 멈췄고





이는

자기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당시 가장 성공적인 작가이자





퓰리처상(1953)과 노벨상(1954)

모두를 수상한 문호文豪 자살한 이유를





그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어릴 적





엄마의 장롱 안엔





엄마가 아끼는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아빠가 외국에서

모랫바람 마신 돈으로 사다준

오메가 시계





낯간지러운 연애편지





그리고 엽 말린 것 책갈피

각종 얄궂고 이쁘장한 것들





그리고 책들 들어있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





뭐길래 저리 소중히 넣어 놨나

해서 언젠가 꺼내봤다가





글자만 빼곡히 적힌 게

펼치자마자 하품이 나와





나는 이내 접고

다시 넣어뒀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아마

결혼을 안 했으면 수녀가 되었을 사람이었다





작고 마른 몸에

양로원 목욕봉사를 다니던 





고기와 술을 멀리함은 물론

비속어는 다른 나라 언어 취급하는 등





마치 방금 받은

정수기 물 같던 엄마는





특히 장롱 안에 모셔놓은 책들을 읽으며





내게 

독서의 중요성르쳤고





나도 엄마가 아빠 몰래

장롱 안에 감춰둔 세계문학전집을 보며





미래를 꿈꾸고

청소년기를 지냈





세상의 모든 아기는 대 선하지 않을까





1899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남자아이

헤밍웨이는 얼굴이 이뻤고





여자 옷을 입 아이였다





거친 엄마 밑에서

여장을 강요당하던





예쁜 얼굴의 남자아이는





훗날 반항이라도 하듯

강한 마초가 되었는데





평생 거칠

남성미 넘치는 가면을 쓰고 살





말년에





어릴 적 그렇게 혐오하던 엄마를 닮은

메리라는 여인을 만났고





강한 성격의 종군 기자 메리와

성역할을 바꾼 성생활을 즐기 등





기형적인 노년을 살 그는





62세 생일을 20 여 일 앞두고

자살로 생을 마한다





수녀 같은 우리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알았으면 할 수 없지만

난 우리 엄마가 몰랐음 싶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첫째도 아닌 남편이 장이라





여차하면 맡겨놓은 돈모

시댁식구가 단체로 쫓아오던 모진 삶에





어쩌면

유일한 안식처였





장롱 속 책들의 저자





하나는 강간범에 살인범

또 하나는 변태성욕자였던 것을





우리 엄마가 몰랐음 싶





나이가 드니

변한 건





아버지, 형, 누나 자살에





이유 없이 여장까지 강요당하던

작가의 지난했던 삶





그의 말년 성적 기행 등

풍파 많던 여정을





적잖이

이해 수 있게 되어버린 것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는 이에게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줄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나는





헤밍웨이의 슬픈 이야기를 알게 된 이





더 이상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한 문체에서

하드보일드함을 느낄 수 없었고





장을 했을 노년의 그가 자꾸 떠올라

집중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난





우리 풀잎 같던 엄마는

이 사실을 절대 몰랐음 싶다





여든을 앞둔 엄마 맘속엔





엄마의 지난했던 시절을 지켜주던

그저 강하고 힘 있던 필체로





종횡무진하던

대문호로 남았음 싶





그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음 싶다





그래서 난





엄마는 절대, 사실을 몰랐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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