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현 Sea Hyun Lee
한 번 보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그림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며 온통 붉은빛이 낭자한 서사로 가득한 그림 'Between Red'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이세현 Sea Hyun Lee,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은 작가가 야간 근무를 할 때 착용했던 적외선 고글을 통해 보았던 고국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고통스러운 기억이 가득함에도 불구, 무서우리만큼 평화롭던 광경은 작가의 캔버스 위에서 진홍빛 언어로 현현되며 과거, 그곳에서의 갈등을 엄숙하게 상기시켜 준다.
작업도 하고
먹고도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으니
학원 강사도 하고
학교에서 아이들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인가
작품 하나 못 파는 무명작가에
예술가 흉내나 내며
적당히 살고 있는 제모습이 보였고,
전세금 뺀돈
6000만 원을 들고는
나이 39에
영국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특별히 정치색을 의도하지는 않지만 북한과 남한 지형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결합하는 작업을 통해 분단된 조국 한반도에 대한 향수와 유토피아를 동시에 표현하는 작가 이세현Sea Hyun Lee, 평범하지 않은 요소로 가득한 그의 작품처럼 그의 삶 또한 범인의 그것과는 달랐다
1967년 거제도에서 태어난 작가는 아버지의 나전칠기 사업이 망한 후 부모를 따라 부산, 통영, 울산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사정이 나빠지자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던 어머니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는데 결국 건강이 더 나빠진 어머니는 통영 이모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대학을 들어가 집안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한 작가는 미대 진학을 위해 회화반이 있는 전통공예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학교에 가보니
미술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태반이었어요.
나는 그런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그때까지
모나미물감이 최고인 줄 알았어요.
어느 날 학교에 가져가
자랑스럽게 펼쳐놓았는데
다른 애들은
전문가용 물감을 내놓더라고요.
기가 팍 죽었죠.
그러나 미술반 청소를 담당하게 되면서 작가는 선배들 그림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는데 매일 수도 없이 그리던 시간은 고스란히 작가의 몸에 실력으로 쌓였다.
그렇게 고3이 되었으나 여전했던 집안형편은 좀처럼 작가를 도와주지 못했다. 그래도 무작정 학력고사를 본 작가는 몰래 홍대 미대에 입학원서를 내고 실기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남들처럼 미술학원은 엄두도 못 낼 상황에 묘수를 낸다.
어머니 몰래
쌀을 훔쳐 학원으로 들고 갔어요.
돈이 없으니
쌀이라도 받고 그림을 좀 봐달라고요.
선생님은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그래, 한번 해보자!’ 하더군요.
당장 그날부터
차가운 평상에 스티로폼을 깔고
함께 먹고 자면서
실기시험 준비를 했어요.
작가는 장학생으로 홍익대 서양화과에 붙었고 회화과에서 석사까지 마친 후 20대에는 학원 강사로 또 30대에는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와 더불어 그 시기는 작가가 회화, 설치미술, 조각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실험을 하던 시절이기도 했었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한 무명작가였던 이세현은 냉정하게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어느 날
"과연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가혹하게 물었습니다.
예술가 흉내나 내면서
적당히 살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 길로
전세를 뺀 돈
6000천만 원을 들고
영국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내 나이 39 살이었죠.
작가 이세현을 유명하게 만든 "비트윈 레드(Between Red)"라는 제목의 ‘붉은 산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영국 유학 시절이다. 미친 듯 그림만 그려보고 싶어 영국으로 떠난 작가는 영국에 도착해 런던 첼시 아트컬리지Chelsea College of Arts에 입학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해 혼신의 노력을 더했던 유학생활은 쉽지 않았는데 첫 수업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던 작가는 낯선 땅에서 사고방식이 다른 서양인들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
입학하자마자
영국 학생들 앞에서
내 작품을 슬라이드로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눌한 영어로
들뢰즈의 철학을 들먹이고 라캉을 얘기하다
그런 내 모습에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부끄러웠어요.
마치,
서양 학생이
동양 학생들 앞에서
공자 왈, 맹자 왈하는 것과 같았죠.
서양의 저 거대하고 찬란한 현대미술은 그동안 작가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아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쭙잖게 흉내나 내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은 후 작업 방식도 바뀌었다.
결국 동서양의 차이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 작가는 자신의 뿌리가 되어준 것들을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기로 마음먹었고 종일 작업에 매달리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작업 찾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된다.
처음에는
우리의 전통음식, 제사상, 돼지머리 등을
소재로 삼아 변화를 모색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본
비무장 지대의 풍경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충격적일 만큼 아름다웠지만
온통 붉어
두려움과 공포감마저 들게 했던 우리의 산하.
‘Between Red'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스위스와 독일에서 프라이빗 뱅킹과 헤드헌팅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Monique Burger와 홍콩에 본사를 둔 투자 회사인 Golien의 CEO이자 열렬한 예술 애호가인 Max Burger 부부가 1990년대 후반에 시작한 개인 컬렉션으로 유럽, 미국, 아시아에 걸쳐 국제적으로 호평받는 예술가들의 작품 수집은 물론, 특히 현대 아시아 미술 수집에 특히 열정적인 Burger Collection의 수집을 시작으로 작가 이세현의 붉은 산수 Between Red'는 날개를 달게 된다
이후 유럽에서부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이세현의 작품은 졸업전시회 때 내놓은 작품도 평론가와 수집가들에게 모두 팔려나갔고 페이스 갤러리, 페로탱 갤러리 등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음은 물론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유명 기업에서도 그의 작품을 사가며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2015년에는 이탈리아 유명 패션 브랜드 페라가모가 협업을 요청해 와 스카프, 머플러, 블랭킷 등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던 그는 붉은색에 대한 선호보다는 불호가 강한 한국정서에는 다소 강하게 느껴져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욱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런던 작업실에 그를 직접 찾아와 이세현의 작품을 구입했던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 울리지그Uli Sigg는 말한다
이세현의 그림은
특히 분단과 같은 한국 문제를 다루고 있는 등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묵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름다운 점이 더욱 매력적인데
물론
다른 훌륭한 한국 작가들도 많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그림들이 많은 반면
이세현의 그림은 다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