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 명의 오은영-전 세계 80 억 인구가 있다면
80억 개만큼 다양한 육아법이 존재할 수 있다.
제나와 수진 님은 유튜브를 통해 모녀의 일상을 공유한다. 같이 놀러 다니는 영상도 있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도 있고 가끔은 충격 고백을 하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주제들로 그녀들의 영상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패션을 사랑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모녀는 실제로 많은 수의 명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에 관한 의견들을 구독자들과 나누곤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그들이 가진 명품들이 궁금해서 영상을 보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분은 나도 가지고 있는 저 제품을 저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코디해서 입는구나 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나는 경제력 있는 엄마 덕에 또래에 비해 아주 넉넉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누군가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수진 님의 그런 행동이 과연 옳은가 이의를 제기하는 분도 계실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군가 자신의 노동력을 들여 정당한 방법을 통해 번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질로 그 마음 표시하는 것은 그 가격을 떠나 남들에게 지탄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육아법이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그만큼 갖가지 다양한 ’ 육아 학대‘의 형태도 나타날 수 있겠으나 적어도 ’ 나의 노동력과 맞바꾼 재화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질을 제공한 행동‘에 흔한 ’ 잘못된 육아‘의 한 형태인 ’ 아동학대‘나 ’ 방임‘ 등의 프레임을 씌우긴 어렵지 않을까
또한 가진 사람은 적당히 써줘야 사회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법, 상위 20%의 고객이 매출의 80%를 창출한다는 파레토 법칙(Pareto’s Law)이라는 것을 좀 가져와 그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백화점을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자면 일단 백화점이란 곳은 좌우지간 문을 열면 백화점 곳곳에 그 많은 현란한 조명들의 전기세부터 깔끔하기 그지없는 화장실 등을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해주시는 청소용역 분들까지 일단 기본으로 들어가는 유지비용만도 어마어마한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백화점을 찾는 사람의 다수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와서 삼사만 원짜리 주차비만 겨우 면할 정도의 소비에 밥만 달랑 먹고 가는 소비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백화점에 왔다고 난데없이 지름신이 급 강림하시어 일단 질러 놓고는 월말 도착한 카드 청구서에 지난날의 그깟 소비 충동 하나 제어 못했던 못난 자신을 자책하며 밤새 이불 킥을 해대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팩트는 안타깝게도 앞서 언급했듯 언제 방문해도 화려한 불빛과 반짝이는 상품들, 게다가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식품관으로 단순히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단번에 기분 좋게 만들어 버리는 백화점이라는 곳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지비가 실로 어마어마하게 드는 곳이므로 상위 20%의 VIP들이 이 부분들을 기본적으로 다 커버해줘야 백화점이 유지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결국 그 ‘이름 모를 VIP’ 들의 심지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정도의 과소비는 아이러니하게도 백화점을 이용하는 대다수의 ‘NOT VIP’ 들을 위해서는 가히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백화점의 그 깔끔하기 그지없는 각종 서비스들은 속속들이 다 누리면서 누군가의 상대적인 과소비는 무조건적으로 지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양심 불량’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렬적인 레드나 평온하고 차분한 평화를 상징하는 옐로만으로는 무지개를 완성할 수 없다. 우리 사회도 나와는 다른 얼굴, 행동 양식, 사상들이 공존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과거 현명함의 아이콘이었던 황희 정승이 번갈아 가며 찾아와 상대의 부당함을 토로하는 두 궁녀에게 “네 말을 들어보니 네 말도 맞고 또 다른 궁녀의 말을 들어보니 너의 말도 맞다.” 고 한 일이 당시 당사자들에게는 실로 고구마를 한 백 개 먹은 것처럼 복장 터지는 반응이었을지 몰라도 그의 현명함이 돋보이는 일화 중 하나라며 이렇게 후세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처럼 전 세계 80억 인구가 있다면 각자 다른 80억 개의 각기 다른 사정(事情)이 존재하는 법, 고로 내가 맞으면 상대방도 맞고 내가 틀리면 상대방도 틀릴 수 있으므로 육아법을 비롯 세상 그 어느 생각도 절대 우위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탑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진님의 ‘내 돈 내산 자녀사랑법’에 대한 논평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금쪽 상담소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수진님에게 내리신 ’ SNS 활동 중단 조치에 관해 얘기를 좀 해보자.
일단 만약 박사님 말씀처럼 엄마인 수진님이 제나를 ‘그저 SNS상의 수많은 팔로워들 중 하나같은 딸’로 여겼다면 이렇게 내가 뼈 빠지게 열심히 번 돈으로 내가 사서 써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뭇매를 수시로 맞게 되는 수많은 명품들을 비롯 각종 물질적 혜택을 제나에게 그렇게나 많이 제공할 수 있었을까
물론 위의 이유가 너무 일차원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시겠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유교 전통으로 인해 돈으로 통용되는 물질을 추구하는 것을 천하다고 여기며 양반 계층에 속했던 ‘사(士)'는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자라 가장 높은 신분이고 '농(農)'은 하늘의 뜻에 따라 농사를 짓고 결실을 보는 계급이라 두 번째인데 '공(工)'부터 하대를 시작하더니 ‘상(商)’은 생산은 없이 남의 것으로 이득만을 추구하는 부류라 하며 천시하는 사상이 뼛속 깊숙이 자리 잡아 누군가에게 물질을 제공하는 것도 받는 것도 속으론 어떨지 몰라도 겉으론 폄하하는 사상이 만연해서 그렇지 이렇게 물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지원을 한다는 것은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또한 서구 기술발전의 오랜 중심지인 독일과 AI 등 최신 과학 기술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진 과학 기술계의 다크호스인 중국 등 현재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두 나라 모두 메르켈 총리나,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에 이어 시진핑 주석까지 다 이공계 출신인 것을 비롯, 통상 ‘명분’보다는 ‘효용’을 중시하며 이념에 사로잡혀 서로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과거를 뒤로하고 ‘실용’과 ‘실리’를 따지는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시대가 급변하고 있는 지금 과거 농업 중심사회에서 상공업 중심사회에 이어 여기저기서 귀가 아프게 떠들어대는 4차 산업 사회로의 전환을 맞으면서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 시대마다 적절한 스탠스를 취하며 변해갔고 따라서 그 시류의 변화에 발맞춰 이상적인 육아관의 정의도 발 빠르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얻어지는 모든 물질은 다 각자의 시간, 피, 땀, 눈물과 바꾼 산물이므로 ’ 따라서 그 어느 물질 하나도 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부모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각자 특장점이 있듯 꼭 모자란 부분도 하나씩 있어 짝을 지어 부부로 살거나 혹은 혼자 살기보단 무리나 집단을 만들어 서로 어울리고 보완해가며 살아가게 만들어졌다.
따라서 아이에게 물질을 제공하든 시간을 제공하든 이는 ‘무엇이 더 가치가 있다 없다.’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시간은 없으나 돈은 있는 부모는 물질로 사랑을 표시하면 되고 또 반대로 돈은 넉넉지 않으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부모는 자신의 시간을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아낌없이 할애하는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물질적으로도 풍부하게 공급해주고 시간도 아주 많~~ 아서 아주 그냥 애들이 질리도록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주며 빵빵한 정서적 안정까지 제공하는 부모가 수는 적으나 어딘가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그 집 애들도 또 가서 물어보면 자기 부모가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지원도 해주고 시간을 내어 여러모로 케어도 잘해주는 등 다 좋은데 어느샌가 그 빵빵한 물심양면의 서포트를 무기 삼아 스스로 정당성을 이빠이 부여하고는 남아 돌아가는 넉넉한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매 순간 예의 주시하시니 이건 뭐 ‘관심’이나 ‘사랑’을 가장한 사사건건 가히 이젠 ’ 간섭의 끝판왕‘ 이 되어 아주 그냥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 단점이 없는 사람이 없듯 부모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또한 내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한 행동이 아이의 성향에 따라 ’ 간섭이나 구속‘ 혹은 ’ 방임이나 부모로서의 직무유기‘ 등 부모는 생각지도 못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 상대가 아이든 어른이든 나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상대의 마음까지 우리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님 같은 육아나 소아 심리 방면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지침을 우리는 많이 의존하고 또 적용해본다. 누구나 뱃속의 아기를 기다리며 육아서 하나쯤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먼지가 소복이 쌓인 채 책장 한켠에 아직도 각종 육아 관련 서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아이 심리부터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좀 더 커서는 딸과는 또 다른 존재인 ’ 아들‘을 키운다는 것에 관한 책까지 책 제목들만 대충 봐도 초보 엄마의 좌충우돌 육아의 힘듦이 고대로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배운 그 육아법도 그 저자가 그 책을 쓸 당시도 아니고 또 그 저자가 관련 학문을 공부하던 시절에 영향력 있는 전문가의 의견일 소지가 다분하므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엄마인 나도 행복하고 아이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윈윈의 방법을 각자 나름대로 찾아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대략 15년 정도 육아를 해온 내 결론은 우리는 그저 각자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나와는 다른 조건을 가진 타인들의 삶이나 소위 ’ 이상적‘이라는 육아법과 나의 그것들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결국엔 ’ 그들과 같이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은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좀처럼 그들과 같아질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끝이 없는 ’ 자기 검열‘과 ’ 자아비판‘으로 이제는 너덜너덜 해질 대로 너덜너덜해진 자존감을 부여잡고 내가 만든 ’ 자책의 굴‘ 속에 스스로 갇히길 선택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 역사상 여성으로서 가장 높은 직위에 올랐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그녀의 책에서 결혼생활 23년 만에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물론 이후 그녀는 더욱더 가열차게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일궈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상원의원의 법률 보좌관과 대학교수, 국제연합 UN대사를 거쳐 마침내 1997년 미국 최초로 여성 국무장관이 되게 되는데 이렇게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그녀였지만 정작 가정사에서는 한때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며 자신을 떠나는 남편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아내였던 매들린은 자서전에서 “‘직업이 이혼의 원인이 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나는 이 질문이 직업을 추구하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적은 바 있다.
그런데 실은 ‘정말 그녀의 꿈에 대한 과도한 정진이 그녀 남편에게 소외감이나 공허함을 느끼게 했고 그것이 결국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아이들이 이혼가정에서 자라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었을 수도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생적으로 특정 분야에 열정적으로 태어난 그녀가 가정만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았다면 그녀는, 또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은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일을 하는 엄마는 일을 하는 엄마대로 또 전업주부인 엄마는 전업주부인 엄마대로 자녀에게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이상적이고 덜 이상적인지는 세상 그 어떤 대단한 전문가라도 단정할 수 없다. ‘이상적’의 기준 자체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엉망인 애들은 엉망이고 엄마가 꼭두새벽에 일을 나가 별 보며 집에 들어와도 바른 아이들은 바르게 자란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엄마가 지금 주어진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 모습 자체가 훌륭한 육아서이지 유명한 사람의 양장본 카피 육아서는 그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80억 개의 다양한 육아법이 존재한다. 앞서 공자의 예에서 보았듯 저서 따로 자신의 삶 따로인 전문가들은 세상에 널렸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상적이라고 주장하는 육아법에 내 육아 진단을 맡길 필요도 없고 유명 육아서에 나온 영재 공부법이니 애착형성법이니 실컷 읽고는 당최 나는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고 죄 없는 머릴 쥐어뜯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 대단하다는 전문가들은 아마도 많은 경우 대학원 석사나 박사 과정에 진학은커녕 당장 나도 벌어야 애들 공부를 시킬 만큼 심각한 경제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을 것이고 또 오랜 경력 단절로 밖에 나가서도 집에서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좀처럼 인정받지 못해 자존감이 날이면 날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본 적도 없었을 것이며 심지어 애랑 살림은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기는 연구하고 논문 쓰는 데만 매진해 육아 전문가라지만 실제로는 정작 그 저서를 읽고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보다도 더 짧은 시간을 자신의 육아에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로 배운 키스는 달콤할 수 없다.
육아는 머리는 산발을 한 채 하루 종일 이도 안 닦고 애 뒤치다꺼리를 하는 나를 어쩌다 거울로 보고 못 볼 걸 본 듯 흠칫 놀라는 것이고 내 새끼의 시퍼런 똥 냄새나 분유를 게워 놓은 옷의 시큼한 냄새에 코가 무뎌져 가는 것이며 간만의 외출에 옷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 입어봐도 당최 마땅한 옷이 없어 주저앉아 그만 울어버리는 것이고 맞벌이 이어도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엉망인 집에 나 혼자만 죄책감이 들어 옷도 못 갈아입고 청소기를 드는 것이다.
엄마인 내가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굳은 심지를 가져 내 삶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간다면 일이 바빠 저녁에만 잠시 엄마를 볼 수 있어도, 입소문이 자자한 최신 육아 교재 없이도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 결국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것은 ‘특정 상황에 대한 이상적인 대처법’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문득 아버지의 반대로 학교 한번 안 다녀봤지만 130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이자 구글의 CEO 선다 피차이 Sundar Pichai조차 먼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던 파워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명언이 떠오른다.
니 박자가 맞는 거지 남들의 박자는 다 X 같은 것이여
남의 장단에 맞추지 말라고
니 장단에 춤추제
니 박자에 맞추고 자픈 사람들이 너한테 막 이렇게 와
남의 박자는 다 X 같은 것이야
야 실패가 뭔지 아냐?
‘했다’는 것의 증거야
실패가 쌓여지믄 그게 경력이야
아무것도 안 하는 새끼들이 허지 마라 하는 거지
야 실패는 아무나 하는 줄 아냐?
영리한 사람이 실패하는 거여
성공할 애들이 실패하는 거여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 꼭 하지 말라고 지랄을 허더라고
그 새끼들 말 듣지 말고 허고 싶은 거 다해
니 박자에 맞춰
니 박자가 맞는 박자야
아기도 아기가 처음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
그러나 곁에서 엄마가 항상 자신 있게 시도해보고 또 의연하게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그 어떤 훌륭한 육아서에 따라 길러진 아이보다 굳고 단단한 심지를 가진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자산으로 아는 엄마의 삶’이야말로 훌륭한 육아서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