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atchTal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May 29. 2024

알리바이로 가득한 시대와 흘러가는 시간(1)

연남. 라이카시네마. 박하사탕. 명동. 명동예술극장. 알리바이 연대기.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항준 감독이 나와 한 말이 있다. "가장이란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점한 자라고 생각한다. 가장은 본받을 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가장은 김은희다." 가장에 대한 장항준 감독의 생각, 그것도 예능에서 웃자고 한 진담 반 농담 반의 발언이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 이번 글을 이해하는 것의 단초가 될 테니 잠시 곱씹어보자. 곱씹었는가? 뭐가 됐든 씹어봤는가? 뭘 던져준 것도 없으면서 씹어보라니 참 불친절하다고 느껴진다면 지금부터 다시 곱씹어보자. 이제는 사회적으로 생각하는 바가 바뀌었을 것이나 가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남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바가 달라졌다고 하나 역사적으로 인식해온 가장은 결국 가부장으로 귀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가부장 신화가 있다면, 그리고 아마 있었을 테지만, 장항준 감독에 따르면 가부장은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이 실제 현실의 아버지 즉, 특정 집안에서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육체적 성별이 남성인 이를 의미하는지 혹은 육체적 성별과 무관하게 이른바 남성성이라 지칭되는 사회문화적, 젠더적 성격을 지니고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한 이를 의미하는지를 따지는 학문적인 논의는 잠시 제쳐두자. 일반적으로 가부장이라고 한다면 전자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른바 가부장 신화에서 특정 집안에서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육체적 성별이 남성인 이는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점한 자여야 한다.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점한 자. 현실적으로 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것은 육체적 성별이 여성일 때보다 남성인 경우가 더 쉽다. 하지만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것은 개인의 인식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별과는 무관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80년대 이전 기성세대 남성 중 가부장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거칠고 무시무시하면서도 어디 가서 무식하고 혐오 발언이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코믹한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실이다. 80년대 이전 기성세대 한국 남성들은 역사적으로 도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이들이기에 현상으로는 존재하는 것 같으나 80년대 이전 기성세대 한국 남성은 인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가부장이어서는 안 되고 가부장일 수 없다. 이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 김재엽 연출의 <알리바이 연대기>에서도 어느 정도 엿볼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전자는 1980년을 시작으로 IMF 시기까지를 다룬 영화이고 후자는 1945년 즈음부터 2000년대까지를 그린 연극으로 두 텍스트에는 1980년대가 겹치고 있다. 단순히 시기가 겹치는 것만이 아니라 기차와 자전거를 통해 영화와 연극은 비슷한 이미지를 생성해 한 쪽은 섬뜩하게, 한 쪽은 희망차게 비슷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는 한국만의 암울한 블랙코미디라 할 수 있는 1980년대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남긴 상처이자 사회에 드리워진 망령이라는 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하사탕>과 <알리바이 연대기>의 1980년대는 한국 남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오늘날 우리는 1980년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1. 한국의 우울한 블랙코미디: 1980년대

들어가기에 앞서 <슬픔의 삼각형>과 관련된 글에서 블랙코미디는 제 살을 깎아먹기를 즐기는 장르라고 한 바 있다. 이를 잠시 기억하도록 하고 넘어가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라면 1980년대는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시기일 것이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 영화들을 몇 편 떠올려보자.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처럼 1980년 전후가 배경인 영화는 누군지 너무나도 명명백백함에도 가명을 써야 하는 시기이다. 혹은 <택시운전사>과 <1980>에서 알 수 있듯 대체로 정치적 거대 폭력에 짓밟히는 민중을 재현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당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혹은 <더 킹>, <1987>, <헌트>에서도 비슷하게 논란이 되는 인물이나 사건은 뉴스, 신문, 사진 등 배경으로 후경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각 영화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지는 80년대는 재밌게도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기반에 깔고 있다. 분명 정치적 폭력으로서 문제가 분명 존재하고 이를 범국민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작게는 명예훼손의 측면에서 크게는 좌우 이념 논쟁의 측면에서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블랙코미디의 시기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그렇다면 조금 거칠게 대입해보면 한국 근현대사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1980년대는 자신의 살을 깎아먹으면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블랙코미디의 시기이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는 80년대 이전의 기성세대 남성에게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블랙코미디의 시기이다. 그 시절을 살았던 기성세대 남성은 경제 성장과 민주화의 정반합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둘 중 어느 한 쪽에 완벽하게 속하지 못했다는 회색 분자이기에 80년대를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신의 시절을 말하는 순간 그는 셋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거나. 어느 쪽에 속하든 그는 좌우 이념 논쟁에 따라 국가와 민중 둘 중 한 곳을 배반하거나 둘 모두 배반한 자가 되는 것이다. 아, 아직 국가와 민중 중 어느 쪽이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도 확정이 안 되었다. 대다수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나 이른바 상대주의, 개인주의, 관용의 시대에는 그렇게 함부로 단정짓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라 한다. 결국 실제로 어떻게 믿건, 어떻게 인식하건, 어떻게 이해하건 80년대 이전 기성세대는 80년대를 온전히 말할 수 없다. <1987>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빨갱이-민주 투사이거나 애국자-폭력의 하수인이다.


즉, 80년대 이전에 태어난 기성세대 남성들에게 1980년대는 자기 자신마저 찢어발기는 과정까지 풍자와 해학의 대상으로 여기는 블랙코미디 중 코미디의 요소, 그러니까 풍자와 해학의 지점을 찾기 어려운 시기이다. 블랙의 요소, 그러니까 금기의 지점만이 강조될 뿐이다. 사건의 진실을 언급하는 행동은 또 다른 진실을 언급하는 반동으로 이어지고 본래의 목적은 희미해지는 가운데 현실의 정치적 혐오 논쟁과 그 속에서 밈과 같은 자극과 도파민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목적이든 간에 1980년대의 블랙코미디성에서 풍자와 해학의 지점은 찾기 어렵고 금기의 지점이 강조되어 논의 본래의 목적이 지속적으로 오염되어 망실되는 이유는 그 시대를 상기할 때 떠오르는 수치심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80년대 이전 세대 남성은 도덕적 우위를 점해야 했던 가장이어야 했으나 생존이라는 화두에서 결국 본인의 순수성을 포기하면서 도덕적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 80년대는 생존을 위해 본인의 순수성을 포기해야 하는 좌절의 시기이자 그러한 순수성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타인에게 분노를 표현하게 한 절망의 시기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생존이라는 알리바이를 활용해 당시의 시대적 폭력을 무시했거나 한 축이 되어야 했음을 정당화해야 했다. 1980년대는 오로지 수치심만 느끼고 코미디가 없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우울한 블랙코미디의 시기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기고 싶은 감정은 꽃처럼 피어나더라(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