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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Dec 04. 2024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단상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 우.천.사.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흐려진 초점에 흘러간 사랑(2.5)


인터넷 소설 같은 재질로 빗어낸 사랑에 연대라는 소재가 초점을 흐려버린 영화이다. 고등학교 여학생 간 사랑이라는 소재만으로도 이미 굉장히 파격적이라 생각하고 파격적인 소재만으로도 이 영화가 지닌 힘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가 그런 파격적인 소재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서사에서 사건은 주요 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주요 사건과 주요 인물의 관계 외부의 관계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외부 사건이 있다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이하, <우.천.사>)에서 고등학생 '주영(박수연 분)'과 '예지(이유미 분)'의 사랑은 서사를 지탱하는 주요 사건이다. 이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우.천.사>는 21세기를 앞둔 종말의 20세기에 우연하게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 우연하게 같은 집에서 살면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주영과 예지, 두 사람이 천국을 따위라 여기며 종말조차 이겨내는 사랑을 달성하는 과정을 보여야 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은 언제고 종말이 찾아와 서로 헤어져야 했을 때 다시 만날 장소로 정한 횡단보도 앞에서 만나 자신들의 사랑을 재확인하기 때문에 <우.천.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우.천.사>는 재확인이라는 결말까지 가는 과정을 주영과 예지 두 사람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갈등과 사건으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체육계의 성폭행과 그에 저항하는 연대라는 외부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우.천.사>의 주영과 예지에게는 크게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나이를 장애물로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살아 숨쉬는 20세기 말 고등학생은 교권의 폭력, 부모에 의한 폭력 등에 노출된 존재들이다. 특히나 여자라는 성별을 지닌 주영과 예지의 사랑은 이성애중심주의의 폭력까지 더해져 더욱 주변으로부터 배척될 사랑이다. 즉, <우.천.사>에서 주영과 예지의 사랑은 이미 그 자체로 배제와 배척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파스텔톤의 90년대, 이른바 인터넷 소설 재질로 스크린에서 보게 될 때 어떻게든 배제와 배척될 것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슬픔이 예견된 억압의 순간이다. 하지만 <우.천.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챈 주영의 엄마가 청소년 사회화 프로그램을 다른 담당자에게 넘기고 예지를 내보내는 사건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장애물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방해가 실제로는 외부 사건만 더욱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등학교 태권도부 코치가 주영의 친구 '성희(신기환 분)'를 성폭행한 것에 주영이 중심이 되어 사건화하고 코치를 내쫓는 여성 연대의 서사는 주영이 예지를 신경쓰기 어려운 상태로 만드는 즉,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간접적인 방해일 뿐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천.사>는 여성의 사랑 특히 그 중에서도 청소년 여자 고등학생 간 사랑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사회가 가할 수 있는 폭력, 예를 들면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사랑만을 강요하는 사회적 인식에 다른 다양한 폭력의 양상을 보여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우.천.사>에서 청소년 구치소에 수감된 예지를 면회 온 이모의 장면을 보면 <우.천.사>는 어떤 서사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예지의 엄마를 사랑했던 이모가 엄마를 대신해 살인죄를 대신 진 것처럼 예지도 주영을 위해 주영의 죄를 대신 지고 옥살이를 한다는 서사적 유사성을 위해서 성폭행 사건과 일련의 해결 과정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한 코치에게 서사적 처벌을 가한 것으로 느껴진다. 소재가 가진 파격성, 그러한 파격성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사회의 단면, 이를 통해 전할 수 있는 여러 주제들 모두 그저 소재를 오락적으로만 활용한 듯한 태도로 사라져 버린다. 심지어 그러한 태도에 화가 나 주영과 예지가 서로의 감정을 알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화 초반부마저도 모두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왓챠피디아

물론 <우.천.사>의 목적이 소재의 오락적 활용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이라면 애초부터 여자 고등학생 간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선택하는 용기나 기지조차도 발휘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용기 혹은 기지가 시작이었음에도, 혹은 어떠한 생각이었든지 간에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모두 오락적이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성 간 사랑이라는 소재로 사랑에 대한 사유의 영역을 넓힌 영화가 개인의 식견 부족일 수 있으나 <캐롤>(2015),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그 여름>(2023) 등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퀴어 영화라 불리는 장르 자체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동시에 여성 간 사랑을 다루는 영화는 여성 연대를 다룬 영화와 비교해 여전히 개인적으로 마이너하고 그렇기에 영화가 지는 책임 역시도 다른 퀴어 영화와 비교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천.사>가 만들 때부터도 어려웠을 것이나 동시에 그 시작부터 책임을 분명히 인지했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천.사>는 그러한 책임을 결과론적으로는 제대로 지지 못해 시도의 용기나 기지 등이 빛을 바란 것처럼 보여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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