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일단 던지고 보는 무례한 감정 팔이(1.0)
CGV SVIP의 원데이 프리패스 혜택으로 본 두번째 영화는 <여름날의 레몬그라스>로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된 대만 로맨스코미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대만의 로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편이라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으로 근무할 때도 기대하고 있던 영화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만 로코 영화는 <나의 소녀시대>(2016) 이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는 순간이다. 영화는 여느 대만의 로코 영화처럼 향수 회사에 재직 중인 성인 '샤오샤(이목 분)'가 고교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샤오샤가 자신의 고교 시절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레몬그라스 향의 향수를 소개하는 대사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샤오샤의 고교 시절 남자친구를 찾게 한다. 남자친구 후보로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 '유즈(누준석 분)'과 미남 전학생 '청이(조우녕 분)'. 세 사람의 좌충우돌 고교 생활기 중 누가 유즈에게 레몬그라스 향을 남겼는지 추리할 수 있을 때 관객은 영화의 제목처럼 여름날의 레몬그라스 향을 떠올리고 누가 그 레몬그라스 향에 적합한 남자인지를 상상해 이른바 꽁냥꽁냥한 멜랑콜리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샤오샤, 유즈, 청이가 어떤 삼각 관계를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을 때 <여름날의 레몬그라스>는 관객에게 더욱 진한 멜랑콜리 애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출처. 키노라이츠
하지만 <여름날의 레몬그라스>는 세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샤오샤와 청이의 관계에 무게를 두면서 관객에게 멜랑콜리 애정을 남기지 못한다. 영화는 남자친구 찾기가 아니라 청이와 있던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나 현재 청이에게 빠진 샤오샤와 샤오샤와 있던 과거의 사건으로 샤오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청이가 서로의 감정을 언제 깨닫고 커플이 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애초부터 레몬그라스라는 매개체가 마당에 레몬그라스가 가득한 조부모의 집에 사는 청이하고만 연관이 있을 뿐 유즈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즉, 레몬그라스 향수라는 매개체 자체가 관객에게 불필요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또한청이의 유일한 라이벌인 유즈만이 아니라 유즈를 좋아하는 밴드부 선배가 굉장히 쉽게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도 영화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가볍게 만든다. 분명 인물들 개개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가벼울리 없건만 영화는 샤오샤와 청이의 관계를 빠르게 완성하는 것에 급급해 각 인물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마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밴드부 선배는 유즈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고 동시에 샤오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인물임에도 자신의 감정을 유즈에게 말하기도 전에 샤오샤에 대한 유즈의 감정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관객이 기다리고 있는 무대에서 내려온다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극에서 사라진다. 유즈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샤오샤의 부름에 달려가 청이의 개를 안고 동물 병원까지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이의 곁에서 슬퍼하는 샤오샤를 보고 울면서 자기 감정을 접어버린다. 인물의 감정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건의 무게감이 가벼워 관객은 그저 편안하게 샤오샤와 청이가 연인이 되는 과정을 바라만 보게 된다.
출처. 키노라이츠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굉장히 불쾌하다. 로맨스코미디이건 로맨스이건 어느 누군가를 향한 호감은 장르적 특성상 굉장히 무거워야 한다. 그렇게 무거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표현할지, 그렇게 표현해도 될지 등을 고민하고 표현한 방식으로 오해가 중첩되어 관계가 깊어지고 얕아지는 것을 반복할 때 관객은 언제나 싱그러운 봄인 청춘들의 감정에 웃으면서도 안타까워 할 수 있다. 웃음을 주면서도 안타까워 부끄럽지만 표현했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그 감정이 결국 결실을 맺길 바라며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고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며 아직 남아있는 감정의 불씨를 느끼며 뜨거운 마음으로 인물들을 응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름날의 레몬그라스>는 관객에게 어떠한 회상이나 응원도 불가능하게 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가볍게 휘발시키는 서사에서 샤오샤, 청이, 유즈 중 누구도 끝까지 응원할 수 없다. 심지어 대만과 미국이라는 장거리에서 연인 관계를 이어가는 샤오샤와 청이에 대해 끝까지 그 연인 관계를 붙잡고 이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어렵다. 이토록 쉽게 휘발되고 지펴질 감정의 이야기에 약 110분의 시간을 소진하는 관객은 무슨 연유에서 자신의 감정을 소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