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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Jul 23. 2021

사소한 추억들

터키

터키의 수도는 이스탄불이 아니다.


“터키의 수도가 어딘지 알아?”


   이 질문이 시작된 건 내가 터키 수도가 앙카라인 걸 터키에 도착해서 알게 된 후부터였다. 한창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다녔던 이유는 이 질문을 하면 대부분 “이스탄불 아니야?”라고 기대한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마 각 나라의 수도에 바삭한 사람은 수도와 경제도시를 어떻게 헷갈릴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 특정 나라의 수도를 외우라고 하는 것은 조금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걸 굳이 외워야 하나..? 요즘 같이 초록창에 한번 치면 나오는 디지털 시대에..”라고 생각하는 핑계도 있지만 나는 자주 듣는 노래 제목, 좋아하는 작가 이름, 20번도 넘게 본 영화 제목도 자주 헷갈릴 정도로 무언가를 까먹는 데에 큰 재능이 있다. 가끔 정말 특이한 것들은 잘 기억하기도 하는데 아마 내 뇌가 제멋대로 중요한 걸 선택해버리고 그것만 기억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한테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수도를 외우라니. 곤욕스러운 일 일수밖에 없다.(초록창 어쩌고 저쩌고는 지극히 핑계일 뿐인 게 확실하다.)

   

   이스탄불 하면 떠오르는 많은 아이콘들이 있지만 앙카라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유명한지 아는 것은 고사하고 이름조차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실 앙카라에서 일 년 반이라는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무엇이 유명한지는 나도 잘 모른다. 오히려 두 번 당일치기로 여행해본 이스탄불에선 그 짧은 시간 동안 봤던 것들이 벽면에 핀으로 갔던 곳을 다 찝어 놓은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밤거리는 위험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여행을 할 만큼(하지만 외국인 혼자 여행하는 것은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매력적인 불빛과 엔틱 한 인테리어를 매장의 가보처럼 여기는 많은 가게들이 약간의 공간도 없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몇 날 며칠이고 이곳에서는 보는 것에 대한 지루함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유명한 사진을 그저 싸구려 물품에 프린트해놓은 것조차 그곳에서 보면 대단한 기념품이 되어 버린다. 갈라타 타워 밑에 있는 기념품샵 골목을 보면서 아마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골목을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걸 상상하곤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앙카라는 우리가 상상하는 터키스러움은 적지만 이스탄불 시내에 비해 더 여유롭고 한적한 느낌이 든다. 시장 쪽은 사람도 차도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도 없지만. 이 지역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내겐 조금 더 고향 같은 느낌이 물씬하다. 앙카라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이곳저곳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반면에 이스탄불에선 메고 있던 백팩을 앞으로 메야할 것 같은 딱 그런 기분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미디어에서 마주하는 터키는 거의 이스탄불일 가능성이 높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 마저도 터키보다 더 터키스러워서 수도가 분명하다는 착각을 하고 만다. 사실 타 나라의 수도나 도시의 특징과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 아니고선 이런 게 큰 소용이 있다 싶기도 하다. (근데 수도를 잘 외우는 분들이 부럽다. 나는 기억을 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터키의 수도가 앙카라인지 이스탄불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터키가 여행하기엔 굉장히 매력 있는 나라라는 것만 알면 우리는 여행자로서 터키를 방문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을 테니 말이다.

  




터키를 여행하다 다섯 번의 아잔 소리와 뜻하지 않은 금식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너무 당황치 마세요.


    사실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예민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 글에 실어야 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근데 터키에서 경험한 문화중에 꼭 이야기하고 싶은 몇 가지는 종교를 빼놓고 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조심스럽게 꺼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종교의 자유를 지지하고 특정 종교를 가진 분들을 비판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오해 없이 이 글을 그저 한 여행자가 느낀 글 정도로만 봐주었으면 좋겠다.

   

   터키를 여행하게 되면 가장 신경 쓰게 되는 부분은 언어도 소매치기도 아닌 아잔 소리와 라마단이다. 이 문화에 대해 처음 경험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딱 하나였다. 한 국가에서 하나의 종교를 이토록 지지해준다는 것이 조금은 신기하고 낯설다는 것. 터키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평소 잠귀가 매우 어두운 편이라 잠을 잘 때 옆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거나 누군가 크게 잠꼬대를 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잠귀가 어두운 사람도 잠에서 깨 당황스럽게 한 소리가 있는데 바로 아잔 소리이다. 터키에선 하루에 다섯 번 아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무엇을 위한 건지 알지도 못해서 알법한 사람한테 물어봤었는데 기도시간을 알려주려 자미라는 곳에서 시간에 맞춰 틀어주는 것이라 했다. 앞서 말한 대로 터키 생활 초반에는 아잔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들려오거나 수업을 받는 중에 들려오면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 소리가 너무 거슬릴까 봐 걱정하는 여행객들이 있다면 너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 울리는 소리의 시간대는 다르지만 대충 비슷한 때에 소리가 나기 때문에 터키 여행에 익숙해질 때 쯔음이면 아잔을 알람 소리처럼 듣고 있는 본인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라마단은 조금 피해서 여행을 가는 것을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라마단을 경험하게   한창 학원에서 시간을 보낼 때였다. 내가 마실 것을 구매하면서 친한 친구에게 마실 것을 사다 줬는데 친구가 당황한 눈빛으로 정중히 거절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에서도 약간 당황한 눈치이길래 무슨 분위기인가 하고 둘러보았더니 평소 군것질 거리를 테이블에 쌓아두던 많은 친구들이 먹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실 것조차도 섭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설마  같이 금식하는 날이 국가 행사처럼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서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사실 터키에는 종교적으로 금식을 하는 날이 있다고 하는 말을  아차 싶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친구들 앞에서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고 있었으니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가끔 꺼내보곤 한다.

   이 기간은 약 한 달 정도 되는데 한 달 전체를 굶는 것은 아니고 하루 중 첫 아잔 소리가 들리는 시간부터 마지막 아잔 소리가 들릴 때까지라고 한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약 하루의 2/3 정도를 굶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식이 필수적인 것은 아닌데 주변에서 금식을 하고 있다면 그들 앞에서 무언가를 먹는 것은 너무 미안한 행동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도 오히려 먹어라 괜찮다고 했었는데 혼자 마음이 좋지 않아 본의 아니게 같이 굶는 시간을 가졌었다. 하지만 잠깐 오는 여행자들은 먹고 싶은 것을 참거나 뒤로 미룰 시간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기 위해 그 기간은 피해서 여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터키에서 먹어 본 파키스탄 가정식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터키에는 이민자들이 많아서 중앙아시아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처음 파키스탄 친구네 집에 초대받은 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연인이자 나의 영어 선생님이 파키스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둘의 연애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는데 특히 여자 쪽 부모님과 형제의 반대가 극 심해서 평생 착하고 말 잘 듣는 딸로 살았던 나의 친구는 처음으로 부모님과 언니들에게 대들어 봤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지킨 사랑은 5년째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둘의 사랑을 응원한다. 가족들의 반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마는 쉽지 않은 관계가 타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5년째 식지 않고 별 탈 없이 두 남녀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 사랑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증명이 된 것 아닐까? 둘의 사랑이 잘못된 선택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의 눈총으로 피곤한 두 사람에게 나마저도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 일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해서 별 다른 말 없이 나는 여전히 둘의 연애를 응원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서사 깊은 이야기가 있는 두 사람 중 파키스탄 친구가 몇몇 친구를 더 해 파키스탄 가정식을 대접해주고 싶다고 초대했고 그렇게 먹었던 파키스탄 가정식은 나에게 감히 앞으로 혹시라도 먹게 될 파키스탄 가정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나도 살면서 파키스탄 음식을 처음 먹어본 터라 그 요리의 맛이 정말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투박한 주방에서 초대한 친구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요리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과 우정을 아끼는지 만큼은 확실하게 안다. 심지어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나름 코스요리로 준비했던 그 식사자리는 파키스탄 친구가 얼마나 고민에 고민을 더하여 만든 결과물일까를 한국에서 집들이를 하면서 뼛속 깊이 느꼈다.

  

    많은 요리들을 해줬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초록색 푸딩 같은 디저트였다. 희한한 향이 나는 향신료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 맛이 익숙하지 않아서 파키스탄 친구들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숟갈을 먹고 모두 배가 부르다며 디저트 스푼을 내려놓고 서로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요즘은 그런 기괴한 맛을 내는 디저트를 먹어도 괜찮으니 모두 마주 보며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한국으로 돌아와 여전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만나고 싶어도 당장 연락해서 만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인연들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요즘 같은 이 시국에는 더더욱 기일 없는 만남을 기약하며 그나마 그때 순간을 돌이키는 것으로 나 스스로를 위안한다. 아마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것 아닐까.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또다시 현생에서 미래에 추억할 만할 만남을 만들어 나가는 것. 여행을 추억하며 많은 것들을 배운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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