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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Sep 04. 2021

길이든 사랑이든 초행길은 쉽지 않다.

호주

호주 버스는 원래 안내방송이 안 나오나요?


한국에서 서호주(퍼스)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환승을 해서 가야만 했다.

터키-한국/ 한국-터키행 비행기를 탈 때는 항상 충전기를 연결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말레이시아에서 서호주를 갈 때 배터리가 25프로 정도 남은 걸 보고도 별 다른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충전하면 되겠거니 생각해서 잠시 들른 말레이시아 공항 내 스타벅스에서도 풀 충전할 생각을 안 하고 몇 시간의 대기시간을 거쳤다. 이 모든 행동을 후회하게 된 건 말레이시아-퍼스 항공을 타고나서였다. 비행기 시트에 앉자마자 유에스비 잭을 찾는데 자리를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등줄기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배터리는 몇 프로 남지 않아서 곧 꺼질듯한 핸드폰을 보고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길지 않은 비행을 마치고 퍼스 공항에 내렸을 땐 탄식이 절로 나왔다. 마음 편히 배터리를 충전할 만한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 공항에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렇게 나의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하다 보니 호주의 첫인상은 좋지 못했다.

(공항에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 없다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나라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저 바닥으로 떨어진 걸 생각하면 사람은 처한 상황으로 판단한다는 무서움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핸드폰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던 약간의 배터리마저 0이라는 숫자와 함께 사라져 버렸고, 내가 들고 왔던 약 30킬로 정도의 캐리어는 바퀴 한 짝을 어디선가 잃어버리고 나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한국에서 껴입고 왔던 겨울옷은 내가 퍼스 공항에 더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내가 공항 밖으로 걸음을 떼지 못하게 축 늘어뜨렸다.(퍼스가 한여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약해둔 백배커스로 가는 버스를 탔고 그때부터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배터리가 꺼지기 전 혹시 몰라 내려야 하는 버스정거장의 이름을 손에 적어뒀었는데 퍼스 버스에는 한국처럼 안내방송도 또 보여주는 안내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기사님께 여쭤서 간신히 내리긴 했는데, 백배 커스 바로 앞에 정거장이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전혀 본 적도 없는 거리에서 사진으로만 알고 있는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버렸다.(자고로 나는 지도를 보고도 길을 헤매는 길치이다.) 내가 내린 버스정거장에서부터  보이는 사람들마다 "너 코알라 백배 커스 알아?"를 물어보며 5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20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의 리셉션을 봐주는 친구를 봤을 땐 얼마나 반가웠는지 포옹이 하고 싶은 걸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고 한다. 첫날부터 쉽지 않게 삐걱대는 여행길이 시작됐다.




예기치 못한 인연과의 만남과 이별이 내게 남겨준 것


많은 지인들이 이 글을 읽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의 호주 생활에서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옹심이 없는 단호박 죽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사랑에 관한 가치관 형성에 또 많은 도움을 줬던 때라서 아마 그때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로 했다.


그 친구를 만난 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백배커스에서 였다. 내가 머물렀던 방은 2층 침대가 8개 놓여있는 16인실 혼성 룸이었다. 남녀가 한 곳에서 같이 지낸다는 말에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집을 구하기 전까지 2주 정도만 머무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한국인이 많은 방도 아니었는데 너무 우연스럽게도 한 침대를 위층 아래층으로 나눠 사용하는 이웃(?)이 되었고, 나보다 8개월 정도 먼저 호주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하루에 너무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했던 나는 예민해졌고 당시 남자 친구는 일이 없어서 그 나름대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턴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들처럼 서로 싸우느라 정신없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성향으로 부딪히고 서로 마음 아픈 말로 상처를 주느라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싸우다 끝난 연애. 이것이 우리 만남의 서사이다. 연애 후반에는 '내가 그 숙소를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침대를 고르지 않았더라면.'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별을 앞두고 있는 여느 사람과 같이 운명을 탓하면서 실패한 연애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 나만의 도피처를 찾았다. 성향이 많이 달랐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싸움이 잦았고 서로를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쯤에는 서로의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이 시간들은 아마 내 마음속에 꽤나 깊은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자주 악몽을 꿨고, 자주 울었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에 붙잡고 있었던 그 오랜 시간이 행복한 순간들은 없고 서로에게 생채기만 낸 시간이 가득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울고 힘들어하는 시간을 거치니 좋았던 시간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픈 사랑을 해볼 수 있었다는 게, 그 만남으로 인해 배우고 느낀 많은 것들에 이제는 감사함을 느낀다.


아픈 사랑은 빨리 끝내는 게 맞다. 그리고 끝나고 하는 후회도 최대한 많이, 빨리 하고 털어내는 게 좋다. 쉽지 않은 거 안다. 하지만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그래야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갖고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이건 상대방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 사람이 혹은 내가 바뀔 거라는 기대를 품고 맞지 않는 인연을 이어나가려 한다면 힘든 시간이 더 길어질 뿐이다. '그저 우리는 운명이 아니었던 거야.' 하고 나의 길을 나서는 게 맞다. 어딘가에서 각자의 힘든 연애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커플들에게 공감한다는 말로 작게나마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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