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란
대청마루 안쪽 벽에 있던 작은 문은 뒤란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파트와 빌라가 주요 거주지가 된 요즘 시대에
맞게 점점 입에 오를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라져 가고 있는 단어지만 그렇게 두기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감의 단어이다.
뒤란의 사전적 의미로는 집 뒤 울타리의 안 또는 뒤뜰의 방언이다. 우리 집 뒤란에는 농사에 필요한 자재들과 술병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앞마당의 화려한 정원과는 아주 상반되는 공간이었지만 어지러운 와중에도 질서 정연하게 더덕이 줄 맞춰 심어져 있었고, 제법 큰 배나무도 반듯하게 자라고 있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은 덕에 오히려 더 잘 자랄 수 있던 식물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끼 우산이었다.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습성에 맞게 뒤란은 이끼가 자라는 데 있어서 최적의 장소였고, 마침내 뒤란은 수천 개의 이끼 우산으로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런 이끼를 가만히 앉아서 관찰하고 있으면 마치 소인국에 야자수 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당시 집안과 밖의 모든 곳은 나의 놀이터였다.
뒤란에서 많이 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추억이 없는 건 아니다. 널브러져 있던 많은 자재 중에 대나무를 아치처럼 휜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게 있었는데, 이것의 용도는 모종을 보호하기 위해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 때 필요한 기둥이었다. 부모님한테 보고 배운 게 농사다 보니 봄이면 나도 농사를 짓겠다고 뒤란에서 작은 대나무 기둥을 몇 개 꺼내와서는 큰 하우스 옆에 나만의 미니 하우스를 만들었다. 하우스 안에는 모종을 대신해서 노랗고 예쁜 이름 모를 들꽃을 잔뜩 심어 놓고 열심히 키우며 놀았다.
그리고 뒤란에 있던 술병은 나의 솔솔 한 용돈 창고였다. 지금은 공병을 가까운 슈퍼에 직접 가져다주면 병당 백원정도 받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굳이 시간을 내고 발품을 팔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굳이 무겁게 슈퍼에 들고 가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고물상 아저씨들이 리어카를 끌고 커다란 가위를 철컥거리며 집으로 찾아왔다.
멀리서 철컥거리는 요란한 가위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공병과 고물을 모아놓고 고물상 아저씨를 기다렸다. 제일 큰 됫병은 당시 시세로 50원이었는데, 50원이면 제법 큰돈으로 깐돌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을 수 있던 돈이다. 지금은 백 원으로 살 수 있는 게 찾기 힘들 정도로 백 원의 가치가 바닥이지만, 그땐 백 원이면 라면 한봉도 살 수 있는 큰돈이었기에 됫병은 노다지 그 자체였다.
됫병의 용량은 1.8리터로 요즘 소주 한 병이 360ml니까 됫병 한 병은 소주 다섯 병 정도 된다. 됫병이 공병으로 나오면 나에게 짭짤한 수익의 기회가 보장되었지만, 대신 그만큼 아빠가 술을 먹어야 공병이 나왔기 때문에 둘의 관계를 생각하면 나는 항상 딜레마에 빠져버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