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아침산책 50회차 후기
✣ 박연습의 단련일기
5월의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져서 아침 산책을 했다. 아침 산책이 숙면에 좋다고 하는데, 나가서 길에 있는 고양이들 밥이라도 줘볼까? 침대에서 일어나 파자마에서 마실 용으로 바지만 갈아입었다. 잘 때 입고 있던 티셔츠 위에는 헐렁한 니트를 한 장 걸치고 작은 가방에 고양이 사료를 챙겼다. 고양이 밥도 주고, 출근하는 사람들 구경도 할 겸 동네 주변을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공사 중으로 시끄러워 가끔 혼자 가던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나는 걸어서 5분이면 숲에 갈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살고 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언덕이라면 지긋지긋한데(내가 다녔던 부산의 중학교는 미끄럼틀처럼 가파른 경사의 언덕에 있었는데, 고등학교는 평지에 있는 곳으로 가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하다 보니 서울에 와서 어린 시절 살던 동네만큼이나 높은 언덕에 살게 되었다. 다시 언덕에 살아보니 역시 단점이 많지만 한 가지 장점은 숲이 가깝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만나긴 힘들겠지?’ 집에서 가지고 나온 사료를 만지작거리며 숲으로 향했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러 개가 있는데 나는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오솔길 같은 소박한 입구를 좋아한다. 인적이 드물고 여름에도 나무 그늘 덕에 시원한 편이다. 경사가 급하긴 하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기도 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숲이 바로 시작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날씨가 유난히 좋은 날이었다. 푸른 하늘과 풍성한 초록을 보니 몇 해 전에 갔던 발리 여행이 생각났다. 여행을 못 가니 일상 중에 여행의 흔적을 찾는다. 여행이라도 온 듯 사진을 찍으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라고 해야 할지... 10분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우연히 눈길이 닿은 곳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산에도 고양이가 있는 게 당연한데, 그날 나에게는 산에서 고양이를 만난 것이 객지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반갑고 신기했다. 그리하여 다음 날 다시 찾은 숲에서도 고양이를 만나게 되고 (이번엔 노란 고양이였다) 셋째 날도 기대했지만 길을 잃는 바람에... 그렇게 초심자의 행운은 끝이 났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땅에서 갓 올라 온 탱글탱글한 버섯을 봤고, 안개가 뿌옇게 낀 날에는 다큐멘터리에서 볼 법한 화려한 색의 새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오늘의 문제를 잊고 방랑을 하다가 집으로 출근을 하면 짧은 여행이라도 마친 기분이다.
프리랜서라고 해도 노동을 하는 이상 매일의 일상은 정해진 레일을 달리는 것과 같다. 이런저런 사정에 휘말리고, 혼자서 밥도 하고 일도 하고 A부터 Z까지의 공정을 혼자 처리하다 보면 하루 24시간 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원한다면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이탈한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궤도를 이탈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흑흑) 아침에 잠깐이라도 주어진 의무에서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걷다가 돌아오면 남은 하루가 내 맘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많이 억울하지는 않다. 그래서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숲에 가다 보니 어느새 오십일이 되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침 숲으로 간다. 이것도 자주 하다 보니 일상이 되는듯하지만. 매일 같은 풍경처럼 보이는 숲도 유심히 보면 하루하루가 다르다. 숲은 매일 변한다. 그리고 나 역시 매일 변하는 풍경의 일부라는 사실을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도 '숲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하며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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