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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재미 Nov 15. 2021

[에필로그] 글쓰기의 쓸모, 치유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번외

‘10개월의 여정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건, 무슨 오기였을까?'


8년을 다녔던 회사에서 허망하게 퇴사하고, 지난 10개월의 시간은 실패와 삽질의 반복이었다.

나는 문득 무슨 생각으로 실패와 삽질의 기록물을 남기겠다고 결심했던 것인지, 이런 일을 벌였던 과거의 '나'에게 의문이 들었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원래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걸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우 몹시 못 쓰는 사람이었다.

특히 에쎄이는 더욱 그러했다.


글을 쓰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자책했다.

하루 6시간 남짓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으면 고작 글 한 편을 완성하는데, 다음날 다시 읽으면 내 글이 너무 똥 멍청이 같아서 미처 두눈 똑바로 뜨고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내 글은 잘못이 없다.

‘똥 멍청이’인 것은 내 글이 아니고, 내 생각, 내 감정을 생생하게 활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나의 잘못일 뿐이었다.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이게 진짜 ‘나’야? 정말 ‘내 생각’이라고 생각해?’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의 근원은 무엇인지, 지금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한 것들이 명료해질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며칠을 하염없이 기다린 적도 많았다.(그래서 10개의 글을 쓰는데, 꼬박 한 달이나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뒤엉킨 생각과 감정이 정돈되고 정제되었 때, 비로소 ‘글’은 형체를 드러낼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정확히 이해할 때, 진짜 ‘나’로 글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쓰는 것이 독일까? 득일까?' 계산기를 두드리는 날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솔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과장없이, 왜곡없이, 허세 없이 담아내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매일, 계속 썼다. 잘 쓰든 못 쓰든 끝까지 썼다. ‘퇴사 이후 10개월의 여정을 글로 남기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매번 고객사의 요청을 받고 남의 콘텐츠를 만들어주며 그 어디에도 내 이름 석자를 남길 수 없었는데, 이번엔 오롯이 내 이름으로 내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글을 쓰기를 참 잘했다’


항상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느라 나 자신에게 마땅히 해 준 게 없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오롯이 나를 위해 한 달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 한 달의 시간 덕분에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의 근원이었던 것들을 용서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예전에는 ‘직장이 망했어, 내 인생도 망했어. 이번 생은 글렀나 봐(엉엉엉)’ 내 감정에 지나치게 과몰입했다면, 이제는 글을 씀으로써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 감정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사안과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가능해지니 비로소 나에게 찾아온 실패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21년 한 해는 실패와 삽질의 연속이었다.

직장생활도 실패했고, 주식도 삽질을 반복했으며, 구직활동도 실패했다.

그래도 실패와 삽질 외에 꾸준히 반복했던 행위가 있다면, 내 실패와 삽질을 '성찰'하려는 시도였다.

마음은 아플지라도 내 실패를 겸허히 인정했고, 취약함과 결점을 정면으로 마주했으며, 실패를 분해하며 차츰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 선택의 기준, 커리어의 중심점, 나에게 잘 맞는 일 등을 발견해갈 수 있었다.


아직은 ‘실패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라고 말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먼 훗날 ‘그때 그 회사를 그만둔 것이, 그 회사에서 탈락했던 것이, 젊은 날의 수많은 삽질과 이로 인해 '이것이 아닌 저것'을 선택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 합격했어요! 제가 그토록 원하던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와 같은 소식으로 이 책을 마무리 지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나는 이제 안다. 현실은 드라마와 같은 극적인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다시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희망과 절망 그 중간 어디 즈음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그렇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실패 경험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 자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마친다.  


PS. 부족한 글이지만, 함께 읽어 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좋아요’ 눌러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2021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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