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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재미 Nov 15. 2021

[10] 실패 후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마지막 이야기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착취하며 일해왔다. 일과 삶의 통합이 비극적 결말로 끝이 나자, 나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 겁이 났다. 

‘내가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 일이 주는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누리며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불과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확신할 수 있었다. 

‘YES, 돌아갈 수 있다. 다시 잘 해낼 수 있다’  

이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일할 준비를 마쳤다. 


이 책은 직장생활의 실패를 거울삼아, 과거의 ‘나’를 부수고 다시 쌓는 10개월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얻은 다섯 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 커리어는 내가 관리한다. 

루닛에서 면접을 볼 때, ‘이 회사에서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기대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나의 답변은 ‘어떤 일이든 관계없으니,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답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오랜 기간 내가 ‘나’를 버리고 수동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답변이었다.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니 그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역량을 키워서, 어떤 모습으로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인지는 내가 설계하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몫이다. 

단순히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회사가 ‘이번엔 이거 해, 저거 해, 아니 또 딴 거 해’ 할 때 ‘넵, 알겠습니다’ 무조건 수긍하고 열심히 일한다 해도, 회사는 내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 커리어는 내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몫이다. 


'열심히 일하지 말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나는 ‘내가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고 쉽고 편한 방법만 찾는 것도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만 ‘왜 열심히 일하는가?’에 대한 이유에 반드시 ‘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한 선택과 그 선택의 산물이 ‘나’와 ‘회사’ 모두에게 윈윈의 결과로 이어진다면, ‘나’와 '회사’ 간의 건강한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나의 생각과 주입된 생각을 구분하자. 

나는 지난 8년간 기업의 리더십 교육 과정을 만들고 조직개발 활동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다. 

리더십과 조직문화 활동은 기업이 원하는 메시지를 (알게 모르게) 구성원들에게 심어주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다. 그리고 회사가 원하는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심어주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오염되고 주입된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의미 있는 목적에 헌신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 심리학자 소냐 루보머스키 – 

‘목적의식을 가져라. 더 크고 높은 목적의식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 - 

‘목적’ 은 리더십/조직문화 도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고, 내가 기업에서 리더십 교육 과정을 개발할 때에도 항상 강조했던 메시지이다. 얼핏 이 한 문장만 보면 되게 멋지고 가슴 뛰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만약 이 문장 앞에 네 글자를 추가한다면?  

“(돈보다는) 의미 있는 목적에 헌신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돈을 추구하기보다는) 목적의식을 가져라. 더 크고 높은 목적의식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이 문장의 이면에 ‘돈’과 ‘목적’을 비교대상으로 삼고, ‘목적’을 ‘돈’보다 우위에 둔다는 가정이 숨어있다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회사의 제도는 대표의 신념을 반영한다. 

만약 대표가 ‘(돈보다는) 의미 있는 목적에 헌신할 때 행복한 삶’이라는 왜곡된 신념을 기본 가정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회사의 임금/보상체계도 이러한 신념에 기반하여 설계될 것이다.

(연봉 테이블과 인상률, 보상체계가 평균 대비 낮게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회사의 대표는 그럴싸한 말들로 자신의 신념을 구성원들에게 주입하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자연과학처럼 절대적 진리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닌 이상, 저명한 학자나 도서의 저자, 회사의 대표나 상사, 유투버나 강사가 하는 말은 정답이 아니다. 그저 개인의 신념이나 견해일 뿐이다. 

그 신념이 마치 하나의 진실처럼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 사람이 다년간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해주는 정보만 수집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지적 오류를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고, 그 사람의 주장이 매우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일지라도, 결국은 타인의 신념에 불과하다. 

고로 타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구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사리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 나의 생각과 믿음이 외부에서 주입된 것인지 진짜 나의 생각인지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선택의 책임은 오로지 ‘나’의 몫이므로, 어떤 선택이 옳은지도 스스로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3. 멈춰야 할 때를 알고,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


‘너는 그렇게 강제로라도 멈춰준 게 다행인 거야’ 


10년 지기 친구가 내 퇴사 소식을 듣고 해 주었던 말이다. 

요즘 같은 주 52시간 시대에 주 70-80시간을 일하며 몇 년째 ‘비정상’으로 살았으니, 가까운 사람들 입에서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내 나이도 어언 33세, 이러한 비정상의 상태로 직장생활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없는 일이었다. 


‘그래, 이제라도 헤어져서 다행이지. 언제까지 그렇게 일만 하다 죽을 순 없잖아?’ 

친구의 말은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비정상의 고리를 ‘내 손으로 끊어낼 타이밍'을 놓쳤다는 사실이다.


3년 전쯤 회사의 가장 친했던 선배가 퇴사를 했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선배이고, 업무적으로도 유능하셨던 분이셨다. 

함께 사무실에서 밤도 새우고,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지방 출장도 다니시고, 회사 차량 정비부터 프린터기 수리까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시며, 15년 동안 회사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셨다. 

매일 바쁘고 힘들게 일하면서도 한 번도 입 밖으로 ‘퇴사’라는 단어를 꺼내신 적이 없던 분이셨다. 

그런데 팀장님이 홀연히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셨다. 

이미 퇴사 이후의 삶을 준비해 놓으신 상태였기에, 아무도 감히 팀장님을 붙잡을 수 없었다. 

회사를 지탱하던 큰 나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팀장님을 위해 화양연화와 같은 송별회를 열어주었고, 팀장님은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회사를 떠나셨다.  


팀장님은 퇴사할 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슬퍼서 엉엉 울기만 했을 뿐, 팀장님이 왜 퇴사를 선택했는지 묻지 않았고, 결국 그 이유를 자세히 듣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분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조망해봤을 때, 지금이 ‘멈춤’ 버튼을 눌러야 할 적기라는 것을 직감하셨던 것 같다.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했고, 이제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위해 방향키를 돌려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항상 시작과 동시에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분히 이 조직에서의 끝 모습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 

멈출 때를 알고,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이야 말로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4. 인생은 끊임없이 밸런스를 맞춰가는 과정. 밸런스가 직장 생활의 ‘장수’ 비결


‘워라밸’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워라밸이 좋다 = 칼퇴한다. 업무 강도가 낮다’로 통용된다. 하지만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의 진짜 의미는 ‘조화로운 삶'이다. 

이는 단순히 칼퇴를 하고, 일이 편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삶을 말한다. 


다음은 내가 생각하는 ‘워라밸’의 구성 요소이다. 

(사람마다 ‘워라밸’을 구성하는 요소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업무의 만족도 : 내 적성과의 일치 여부, 재미, 성장 가능성, 커리어 비전 등 
조직에 대한 만족도 : 회사의 조직문화, 비전과 전략, 경영진/리더에 대한 신뢰, 동료들과의 케미 등
개인 시간 : 야근/주말 출근이 없어서, 자기 계발/여가&취미/가족&친구들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음
연봉(돈) : 일한 만큼의 대우, 동종업계/동일 직무 대비 높고 낮음, 당장 혹은 앞으로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수준(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수준이란 각자의 재산 현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


나는 회사를 다닐 때,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이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분리해서 각각의 비중을 재보는 작업을 진행하진 않았다.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적어도 그 회사에서 소처럼 일만 하고 가난해지는 모습이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 일찍 깨달았을 것이다. 


물론 네 가지 구성요소들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회사는 거의 없다. 

(내가 프로젝트를 했던 수많은 기업들 중에 네 가지를 모두 갖춘 완벽에 가까운 회사를 딱 한 곳 발견했지만, 그 회사의 경우 구성원들의 회사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 신규/경력직원들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다.) 

회사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없는 구조라면, 주도적으로 인생의 ‘워라밸’을 계획하고, 지금 현재의 내 일상이 계획했던 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지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다음은 ‘워라밸’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가이드라인이다. 

[1] 나만의 기준으로(예를 들면 인생의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혹은 내 삶의 가치관을 반영하여) 지금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를 선정하고, 구성 요소별로 가중치를 부여한다.  

- 예시 : ‘워라밸’ 지수의 총점을 100점 만점으로 삼고, 업무 30, 조직 10, 시간 20, 연봉 30과 같이 각 구성요소의 합계가 100이 되도록 설계  
[2] 현재 내 인생이 내가 설계한 ‘워라밸’ 포트폴리오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여러 구성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만족도를 점수화한다.
목표치에 비해 만족도가 낮은 구성요소가 있다면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다. 
[3]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너무 한쪽에 치우쳐있거나, 어느 한쪽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다. 

- 예를 들면, 아무리 워커홀릭이고 일을 좋아한다고 해도, 하루 12~14시간씩 일만 하면서 평생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의 체력과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것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체력적 한계나 번아웃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 또한 업무/조직/시간 등 다른 요소들이 모두 만족스럽다고 해도 월급이 적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이 회사와 빠른 이별을 선택해야 한다.


결국 인생은 끊임없이 밸런스를 맞춰 나가는 과정이다. 

만약 지금의 일과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어떤 요소로 인해 불만족스러운 것인지 따져보고, 개선을 위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꼭 회사를 옮기지 않아도 좋다. 지금 이 회사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거나, 이 회사에서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이직을 하던, N 잡을 하던 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워라밸' 레벨을 끌어 올려야한다. 


내 삶의 ‘워라밸’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직장생활의 장수 비결일 것이다. 




5.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한다고 내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이제 실패도 좀 해봐야 해요’ 


일을 하면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담당자가 퇴사 이후 나에게 해준 조언이었다. 

사실 너무 공감 가는 말이기도 했다. 자소서 항목이나 면접에서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실패 경험은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이 등장하면 내 머리는 하얗게 정지되었다. 


나는 최근 4년 간 이렇다 할 실패 경험이 없었다. 

항상 시간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고객사가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내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뒤엉키며, 매번 내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에너지를 사용했고, 시간이 부족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고객사 담당자가 만족할 때까지, 그리고 나 스스로의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입했으니 업무 역량도 빠르게 향상되었고, 마치 자동 입력 알고리즘처럼 ‘역량’과 ‘시간’의 함수는 ‘성과’라는 결과값을 만들어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패’란 내 사전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자, ‘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나는 실패 후에 느끼는 좌절감과 수치심,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싫어서, 그렇게 내가 맡은 일들을 꾸역꾸역 성공해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연속된 성공 경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안겨줬다. 

나는 제대로 된 실패를 해본 적이 없어서 실패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반응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저기 리더십/조직문화 책에서는 실패를 찬양하고, 실패는 축복이라며 떠들어대는데, 나는 그냥 지금 내 앞에 놓인 실패가 너무 버거웠다. 

갑작스러운 퇴사 후 한 두 달은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매일 고통 속에서 좌절하고 자책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지금은 ‘실패’라는 단어를 책 제목에 붙여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괜찮아졌다. 


막상 회사를 나와서 ‘일’과 ‘나’를 분리하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살아보니, 실패는 나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직장생활의 뼈저린 실패 경험을 통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2021년 1월 1일 – 2021년 11월 14일


가까이에서 볼 땐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된 비극이었지만, 멀리서 보니 희극이었다. 

아마 이 실패와 실패를 성찰해온 10개월의 시간이 없었다면, 앞으로의 인생도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바쁘고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고 즐겁게 성장하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누구에게도 쉽게 휘둘리지 않고, 가치 없는 것들에 상처 받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 이쯤에서 나의 이야기를 끝맺음 지으려고 한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너무 바쁘게만 살고 있다고 생각될 때, 이 글을 다시 꺼내어 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지금 너, 잘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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