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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May 21. 2022

아이를 키우는 일? 내 안의 불안과 싸우는 일


1.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난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학교의 실정을 잘 알고 있어서 입학을 준비할 때 남들보다 걱정이 훨씬 덜 되었다. 주간 학습 안내, 각종 준비물을 챙기는 일, 담임선생님의 지도 방식 등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불만도 없고 그저 아이를 맡아주심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다만 아이의 돌봄이 문제였다. 우리 부부는 7시 반쯤에 집을 나서야 하는데 그러면 아이가 등교하기 전까지 약 한 시간의 공백이 생긴다. 일곱 살 시절까지 아이는 혼자 집에서 있어본 적이 없었다. 가끔씩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오겠다고 말해도 완강히 거부하던 아이였기에 공백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더욱 골치가 아팠다. 혼자 두는 것이 안쓰러우니 등교 도우미를 구해서 돈을 드려야 하는데 좋은 어른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뜩이나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가 낯선 어른과 아침에 함께 있는다는 것이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학교를 적응하는 것만 해도 큰 일이기 때문이다.

 


2. 어디에 살아야 하나.


  직장이 있는 서울로 다시 이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였다. 집과 직장이 가까우면 아침에 더 늦게 집을 나서도 될 테니 말이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 아침 공백시간도 줄고 퇴근 후에도 좀 더 에너지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남긴 에너지로는 아이와 더 눈을 맞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이가 아플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반차나 연차를 거의 쓸 수 없는 직업의 특성상 대책이 없었다. 더구나 코로나 시국에는 감기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코로나 이전보다 더욱 학교에 갈 수가 없다. 아이가 열이 나면 종일 혼자 집에 두어야 한다. 고민 끝에 적어도 저학년 때에는 친정 부모님 근처에서 생활해야 할 것 같아 이사를 보류하였다. (지금 집이 친정 근처다.) 먼 출퇴근 길이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가 아픈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내가 아주 운이 좋음을 안다. 몇몇 친구들은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어 아이가 아프면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직장에 가거나, 도우미 분들을 쓰거나 한다. 모두들 겨우 겨우 하루하루 살아간다.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맞추어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친구들도 생겼다. 나 또한 아이를 낳고 내내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학군이 좋은 곳에서 키우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학군이 좋다는 것은 무엇인가. 학군이 나쁘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속들.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가 마치 아이의 인생을 결정지을 것만 같은 내 불안과의 싸움.



3. 여덟 살의 하루


  나는 새벽 5시 무렵에 기상을 한다. 그리고 6시 반 즈음부터 아이를 깨우기 위해 일부러 소란스럽게 아침 준비를 한다. 7시 무렵 아이가 겨우 눈을 뜨면 7시 반까지 밥 먹기, 씻기, 가방 챙기기 등 모든 준비를 부리나케 시킨다. 가만히 앉아서 쉬고 싶어 하는 아이를 재촉하며 근처 할아버지 집으로 데려다준 뒤 나는 서둘러 출근을 한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쯤 시간을 보내고 8시 40분쯤 등교를 한다.

  

  반에서 공부를 한 후 수업이 끝나면 아이는 돌봄 교실로 간다. (돌봄 교실도 겨우 당첨되었다.) 돌봄 교실에서 책을 보다가 외부 강사님과 수업을 한 뒤 다시 책을 보다 보면 할아버지가 돌봄 교실로 오신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도 아이는 책을 본다. 이렇다 할 놀이나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유튜브 소리가 가득한 집에서 할아버지는 컴퓨터만 바라보고 아이는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우리 부부가 퇴근을 하면 아이를 찾으러 간다. 아이는 다시 우리 집으로 이동을 한다. 중간에 놀이터에 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서둘러 저녁을 먹이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항상 충분히 놀지는 못한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내 입에는 "빨리, 빨리."가 붙어있다.


  집에 도착한 아이는 가방을 아무 곳에나 던져놓고 논다. 집에서도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 놀이를 하기보다는 부모가 저녁 준비, 빨래 등을 하는 동안 혼자 노는 편이다. 빨리 밥을 먹고 일찍 재워야 다음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니까. 우리는 아이를 빨리 재워야 하는 목표 안에서 계속 잔소리를 늘여놓는다. "가방 정리해. 논 것 치워. 책 본 것 정리해. 세수해. 치카해. 숙제해. 연필 깎아놔." 등등. 부모의 지시, 시간제한, 각종 협박 속에서 아이의 하루는 간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하루 종일 동선이 바쁘다. 아직 학원을 하나도 다니고 있지 않는데도 그렇다. 가방을 벗었다가 멨다가, 외투를 입었다가 벗었다가, 마스크를 썼다가 벗었다가, 마스크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으러 다니다가 다시 쓰고 길을 나섰다가.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4. 우리 어렸을 적

 

  내가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집이 떠오른다. 아주 어릴 적은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 부모님도 맞벌이였기 때문에 항상 혼자 학교에 갔다가 혼자  집에 왔다. 집에서는 티브이를 보며 다른 식구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가끔 친구 집이나 놀이터에 가서 놀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부터는 도대체 옛날에는 어른들 없이 어떻게 그렇게 놀러 다녔는가, 항상 의아했다.


  한 지인이 말했다. "그땐 골목길에 차가 없었어. 지금만큼 차가 많지도 않았지. 유괴범이나 성폭행범 등 무서운 사람들도 적었고.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핸드폰이 없었으니까 실시간 뉴스를 우리는 잘 몰랐었나 봐."




5. 위기는 기회다.(1) - 첫 번째 위기


  아이가 입학한 후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삼월 중순의 어느 아침이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정도는 혼자 타고 올라가도 되겠지 하면서 할아버지 집 1층에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태워 올려 보내기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이날도 아이와 1층에서 헤어진 후 나는 급하게 운전하며 출근 중이었다. 혹시 몰라서 아이가 도착할 시간에 친정 아빠와 통화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통화가 조금 늦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아이는 나와 헤어진 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잠시 갇혀있었던 것이었다. 아이가 비상 전화를 눌렀지만 관리실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아이가 홀로 울다가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다 보니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움직여서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통화를 끊고 늦은 출근길에 운전을 하는데 심장이 쿵쾅댔다. 다시 차를 돌려 아이에게 가서 토닥이고 안아주고 싶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놀랐을까. 관리실은 왜 전화를 안 받나.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런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직 남아있는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돈을 선택해서 아이가 이 꼴을 당하게 만들었나.' 모든 것에 너무 짜증이 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쿵쾅대는 내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아니야. 위기는 기회라고 했지. 아이는 부모가 믿는 만큼 큰다고 했지. 세상은 원래 이렇게 험한 곳인데 내가 평생 아이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 줄 수는 없지. 강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는데. 작은 시련이 없다면 아이는 강해질 수 없겠지. 오늘의 경험이 아이를 좀 더 단단하게 해 줬을 거야.'라고 생각하려고 자꾸 애를 썼다. 눈물이 나려는 마음을 다잡고 강한 부모가 되려고 차 안에서 혼자 소리 내어 중얼거리며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6. 위기는 기회다.(2) - 두 번째 위기


  두 번째 위기는 오늘이었다. 아이는 아침에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을 3월 내내 싫어했다. 이해가 갔다. 나 같아도 바쁜 동선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을 거다. 오늘은 아이가 평소보다 심하게 가기 싫어했다. 아이가 우는 것이었다. 아이는 평소에 원하는 것을 두고 잘 울지 않는다. 가기 싫은 마음이 정말 강하구나 싶었다. 그런 아이를 붙잡고 나는 또 화를 내고 재촉과 협박을 하면서 아이와 씨름을 하였다.


  아이는 자기 혼자서 집에 한 시간 있다가 학교에 바로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읽고 있던 만화책을 계속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직 시계를 볼 줄도 모르고 집 전화도 휴대폰도 없는데도 아이는 자신 만만했다. 불안한 건 나였다. 쉽사리 집을 나서지 못하며 서성거렸다. 안 그래도 요새 아이 알리미 서비스(아이가 등하교할 때 부모에게 문자가 자동으로 전송되는 서비스)가 먹통일 때가 많아서 더 그랬다. 아이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 등교를 못 하게 되면 선생님으로부터 오전 9시, 10시쯤 연락이 올 때까지 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 연락이 오지 않으면 잘 등교한 것이고, 무슨 연락이 오면 덜컥 겁을 내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나는 다급해졌다. 벽시계에 황급히 표시를 하였다. "긴 바늘이 8에 가면 가방 메고 학교로 출발하면 돼. 마스크 식탁 위에 둘게. 늦으면 안 돼. 찻길 건널 때 왼쪽, 오른쪽 살피고. 집에 누가 오면 대답하면 안 되고." 각종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생각하면서도 표정은 차분하려고 노력했다. 이번도 첫 번째 위기 때와 같다. 아이가 스스로 하겠다고 말한 이상 나는 아이의 말을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아니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이게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면 어쩌지.


  집을 나서고 나는 친정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은 아이가 할아버지 집에 가지 않을 것이고 아이 혼자 등교할 거라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직장에서 오전 내내 느린 시간을 보냈다. 먼저 출근을 했던 남편과 걱정하는 마음 반, 기특한 마음 반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우리 서로 마음이 들쑥날쑥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때 아이를 찾으러 할아버지 집에 가보니 아니 글쎄, 아침에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왔었다지 뭔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던 할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등교를 했던 거였다. 아이는 "내가 혼자 갈 수 있는데 할아버지 왜 왔어!"라며 짜증을 많이 냈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 부부는 오전 내내 아이를 기특히 여기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친정 아빠에게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뺏은 것 같아 아쉬웠다.



7.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안의 불안과 싸우는 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에는 불안이 크다. 아마 중고등학교 입학 전에도 그럴 테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도, 군입대를 앞두고서도 그렇겠지. 아이가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결혼을 앞두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저 자식이라는 존재는 자식의 나이에 상관없이 부모에게 끊임없는 불안과 걱정을 던져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지금 옆에 부모가 없다. 항상 부모가 아이를 졸졸 따라다닐 수는 없다. 언젠가는 아이가 혼자서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태산이다. 부모는 그걸 조금씩 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을 해주는 정도밖에는 못해준다. 그렇게 보면 부모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아이는 믿어주는 만큼 크는 것.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곁에서 응원해주면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해낸다. 물을 엎지르면서도 상처가 나면서도 결국은 자기 수저로 자기 밥을 먹게 된다. 어른이 되면 세상을 주름잡으며 나아갈 것이다. 중요한 건 부모인 우리다.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 연기를 해야 한다. 진심을 담으면 더 좋겠지. "나는 널 믿어. 넌 뭐든지 잘할 수 있어. 처음에는 다 어려워. 괜찮아. 연습하다 보면 잘할 수 있게 된단다. 연습을 안 하면 잘할 수 없단다. 파이팅. 힘내."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야 한다. 내 마음속 불안은 그냥 물리쳐야 한다. 그게 부모의 업인가 보다. 마음이 흔들릴 땐 친구가 말한 '머슴처럼 키워야 자기 할 일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을 되새긴다. 진짜 '머슴'이 진짜 인생의 '주인'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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