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라 Mar 25. 2023

자연으로 돌아가는 산골장

  아빠가 갔다. 하늘나라로 결국은 갔다. 꽃들이 피기 시작하고 새 잎이 돋아나는, 따뜻하지만 봄바람이 세게 부는 계절에 갔다.



  아빠를 화장하는 날에도 바람은 세게 불었다. 햇살은 벌써 여름이 온 것 같았다. 두 시간여의 화장이 끝났다. 뜨거워진 아빠를 식히고, 아직 열이 남아있는 유골함을 들고 우리는 산골장을 하러 갔다. 산골장은 추모공원 안에 있는 어떤 통 안에 아빠를 붓는 방식이다. 통이 커서 다른 사람들의 뼛가루들과 섞일 수밖에 없다. 몇 주가 지나 그 통이 꽉 채워지면  어떤 일정한 땅에 가서 통을 붓고 비운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빠의 뼛가루가 다른 사람들과 섞이게 되는 것이 싫었다. 어떤 사람들이 죽었을지 모르고 어떤 원혼이, 어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섞여있을지 몰라서였다. 혹시 하늘나라에서 아빠가 그들의 비명을 듣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을 좀 더 해보니 그 생각은 잘못된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인을 땅 밑 관 속에 묻는 방식, 화장하여 납골당 칸 안에 모시는 방식, 잔디장과 같이 땅 속에 유골함을 묻는 방식 등이 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는 몇 달 동안 가족들과 여러 방식들을 고민했다. 난 그중에서 산골장이 제일 나을 것 같았다. 아빠는 살아있을 때 최소의 비용으로 자신을 아무 데나 뿌려달라고 여러 번 말했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납골당이나 묘 관리비를 매년 내게 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저 자연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었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 중에는 매사에 물티슈를 쓰고 공중화장실의 손잡이를 휴지로 감싸 잡으면서 청결에 힘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몸과 공기와 우주는 이미 원소들의 합이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 내쉬는 숨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들과 함께 뒤섞인다. 꽃들이 내뿜는 향기와 타버린 육체의 가루들은 흙 속으로 뒤섞인다. 비가 오면 다른 관에 묻어둔 사람들도 모두 흙 속에서 섞이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내려간다. 바닷물은 다시 구름이 되어 우리는 빗물을 마시고 그 빗물을 먹고 자란 채소와 동물들을 먹는다. 이렇게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아빠의 뼛가루가 다른 사람들의 것들과 섞이게 되더라도 그것이 자연의 방식이다. 자연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나무 한 그루가 자랄 때 흙과 물과 햇빛이 필요하듯이 모든 것이 섞이고 흡수되어야만 탁월하게 아름다운 새 잎을 돋아낼 수 있다. 티끌 같은 원소들이 모두 자연이다. 다른 사람의 뼛가루와 섞이는 것을 혐오하여 물티슈로 닦아내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거다. 이미 우리는 같은 공기로 숨을 마시고 내뱉고 있으니까.



  아빠의 뼛가루를 남동생이 산골장 통에 넣을 때 바람이 세게 휘이익 불었다. 그 바람에 아빠의 뼛가루가 내게 날렸다. 내 코와 입으로 들어온 것 같다. 우연의 일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빠와 계속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를 부은 그 통이 몇 주가 지나서 꽉 채워지게 되면 붓게 된다는 땅에 가봤다. 땅을 파고 그 위에 나무판자들을 일정 간격으로 덧대 놓았다. 판자들 사이에 틈이 있어서 통을 부으면 그 틈으로 사람들이 가라앉는 방식 같았다. 틈이 있어서 햇빛도 들고 바람도 잘 통해 보였다. 그래서 참 좋았다. 안심이 되었다. 아빠가 햇빛도 쬐고 옆에 있는 철쭉이 곧 피면 향도 맡을 거다. 바람도 계속 불 테니 바람에 날려 세상 밖 구경도 할 수 있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는 관이 너무 싫다. 너무 좁고 답답할 것 같다. 아빠는 며칠간은 관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자유다. 이제는 편안히 넓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은 산골장은 고인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 별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통의 생김새가 조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되도록 납골함에 잘 모셔야 나중에 기억하러 올 때 좋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난 반대다. 몇 년이 지나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진 그렇다. 아빠는 그 추모공원 햇살 아래에도 있지만 사실은 공기 중에 계속 같이 있다. 어느 곳에서나 아빠의 원소는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 원소는 내 몸속에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추모공원에도 내 직장에서도 함께 같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슬프지 않다. 아빠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을 때에는 그저 그 자리에서 기억하면 된다. 그게 부족하면 추모공원의 그 땅으로 가서 햇살을 받으면 된다. 아직 아빠가 떠난 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괜찮다. 그렇게 많이 슬프지도 그렇게 많이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다. 이런 내가 괜찮은 건가 싶긴 한데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아빠는 이제 고통 없이 편안해졌고 지겨웠던 병원에서 나와 조용하고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아빠를 먼저 보낸 엄마를 신경 써야 할 차례니까. 지인이 말했듯 아빠는 아빠의 인생을 잘 살다 간 거고, 나는 나의 인생을 잘 살면 된다. 엄마도 동생들도 모두 자기의 인생을 잘 살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우리도 자연으로 돌아가면 된다. 아빠를 보내면서 남편과 나도 서로 산골장을 하자고 약속을 하였다. 각자의 인생을 잘 살다 햇빛과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간다면 그 또한 따뜻하다. 괜찮다.





작가의 이전글 비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