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기간도 포함한다고 했을 때 벌써 교사가 된 지 17년 차 정도 되었다. 신규 교사일 때 하늘같이 우러러보던 사십 대 선생님이 된 것이다. 그때 내가 봤던 그들은 교직원 회의에서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주변 선후배들의 의견도 잘 조율하고, 업무는 당연히 잘하며, 반 아이들도 꼼꼼하고 카리스마 있게 잘 보살피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같은 학년 교사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 나이가 나보다 어린 부장님에게 선배님 소리를 듣고 소스라쳤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선배님이 될 자격은 없다. 학교폭력실태조사 가정통신문을 제일 늦게 배부하고, 그마저도 인증번호를 알려줬어야 하는 것을 다음날 보호자의 질문으로 파악하며, 우리 반 아이들은 계속 싸우고, 상담주간에 기 센 보호자에게 융단 폭격을 맞고 벌벌 분노한다. 내가 봤던 사십 대의 선배들도 실상은 나와 비슷한 모습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물론 신규 때보다 나는 많이 나아졌다. 아이들을 대할 때 조금의 여유는 생겼다. 아이들과 계속 신경전을 하는 것보단 때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것도 필요함을 알았다. 회의 시간에 내 주장만 말하기보다는 내 주장을 가장 늦게 조금 말해보고, 말해봐서 통하지 않으면 말을 접어야 함도 배웠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처럼 머리는 좌로 행동은 우로 하는 것이 덜 꼰대가 되는 것도 알았다.
교직은 어떠한가. 교사 커뮤니티에 아이들, 동료 교사, 보호자들을 혐오하는 글들에 너무나 화가 나던 시절은 조금 지났다. 그들도 철이 들 시간이 필요하겠지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매년 복불복인 아이들, 보호자를 만나야만 하는 구조에 질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던 시절도 조금은 지났다. 아이들과 더 멀리 거리를 두고, 교직과 더 멀리 거리를 두면서 직업으로서 교사로 지낼 수 있는 약간의 여유는 생겼다. 내 의식은 그렇다.
하지만 무의식은 매일밤 악몽을 꾼다. 아이와 함께 아홉 시에 뻗을 때가 많은데 꼭 새벽마다 반에서 제일 나를 거슬리게 하는 아이들이 나와서 내 말을 듣지 않는 악몽을 꾼다.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아야 정상이고 계속 바른 행동을 알려주는 것이 나의 직업인데도 그날 아이가 지었던 표정에 화가 나고 꿈을 꾼다. 꿈에서 아이는 나를 계속 화나게 한다. 화를 내면서 잠에서 깨고 다시 잠에 들려고 해도 계속 화가 난다. 과제 분리, 이것이 나의 지상 최대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