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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28. 2021

콩벌레가 되었다.

아아, 들립니까?


  코로나 이후에 눈치 보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마스크를 잘 쓰고 있는지, 열이 나는지, 혹시 내가 무증상 감염자는 아닐지.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에도, 아이들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을 때에도,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꼭 안아주고 싶을 때에도. 만남과 접촉이 불허되는 세상에 이 걱정 저 걱정을 하며 콩벌레처럼 위축이 된다. 

  

  교사가 되고 나서 초반 몇 년간은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위축되는 나날들이었다. 세상에는 교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어디 모임에서 직업을 밝히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상처 줬던 나쁜 교사들에 대해 성토하였다. 나는 그들의 공격적인 태도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하며 그들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마치 내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지금은 그런 사람 거의 없다고 변명을 해야 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민원 걱정들. 신규 교사일 때는 민원에 벌벌 떠는 관리자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겁쟁이가 되었었다. 무엇이라도 사람들과 다른 교육적으로 '특이'하고 '재미있는' 뭔가를 하고 싶을 때는 멈칫하며 고민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경력이 쌓여갈수록 억지성 민원들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배포가 생겼다. 큰 줄기 안에서 작은 가지들은 잘라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직 큰 일을 당해보지 못해서 그런다고 겁을 주는 선배들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진짜 중요한 것들,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전교조 교사로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위축감을 많이 느꼈다. 내가 보기엔 정당한 말이나 행동들을 했는데도 해직이 되거나 불이익을 받는 선배들을 보았다. 인터넷 댓글은 당연하고 정치인들로부터도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시선이었다. 인심 좋기로 유명한 교감으로부터의 탄압적인 말들, 동료 교사들로부터의 날 선 시선들, 논리 없는 거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편견들. 맞서 싸울 때에는 3의 법칙으로 세 명 이상의 동료들이 있어야 하는데 학교 전체에서 나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외로움. 무언가를 말해도 흡수되지 않고 물과 기름처럼 뒤섞여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 마음속에서는 '혐오표현입니다, 성희롱이에요, 사과하세요.'의 말들이 가슴을 벌렁거리며 떠다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쳤다가 수없이 이불 킥을 하며 분노하는 밤들. 


  위축된 마음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다. 힘을 잔뜩 줘서 뭉친 근육들은 쉽게 펴지지 않는다. 콩벌레가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몸을 펴는 것도 어쩌면 힘들어서였을까. 경험상 몸이 펴지려면 목소리를 내어 말을 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 목소리가 가 닿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해야 밤에 잠을 잘 잔다. 적어도 답답한 것을 못 참는 나는 그렇다. 안되면 글이라도 다다다 써야지.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기저기를 모험을 다니는 콩벌레처럼. 말도 안 되는 편견들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말은 뭐래, 이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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