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벌써 이십 년이라니. 적어놓고도 깜짝 놀란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친구들과 볼링을 몇 번 친 적이 있었다. 그때 어쩌다 볼링공에 손가락 하나가 삐끗하여 부었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그 손 전체 관절들로, 두 손으로 퍼져서 나중에는 온몸의 관절이 아팠다. 병원 몇 개를 전전한 후 최종적으로는 류머티즘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자가면역질환으로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는 부류의 질병을 말한다. 요즘에는 흔해진 아토피, 비염, 천식, 원형 탈모 등도 자가면역질환 계열이라고 알고 있다. 몸에 어떠한 염증이 생기면 내 몸이 그 염증만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건강한 부분도 염증인 줄로 착각하여 공격이 일어나고 그래서 점점 염증이 많아지는 원리란다.
류머티즘이 고1 때 처음 온몸으로 나타났을 때의 우울감은 참 컸다. 아토피보다 더 큰 우울감이었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관절들이 있는데 통증으로 쉽게 구부리거나 움직이질 못하여 일상생활이 많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 화장실에는 무릎을 구부리고 쭈그려 앉아야만 하는 좌변기가 대부분이었다.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고통스러워하곤 했다. 지퍼를 내리고 올리는 것도 천천히, 무릎을 구부리고 일어나는 것도 천천히.
공부를 할 때에는 샤프를 잡기 어려워 샤프에 종이를 돌돌 말아 테이프를 붙여 샤프를 굵게 만들어 쥐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수학은 암산이라도 조금은 가능하지 영어단어 외울 때는 여러 번 쓰면서 외워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이를 닦을 때에는 칫솔을 손에 쥐고 닦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칫솔이 이렇게 얇은 물건이었던가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류머티즘은 주먹을 세게 쥐거나 작은 물건들을 힘을 잡고 쥐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위 바위 보를 해야 하는데 바위가 보와 비슷한 모습.
또한 관절염은 추위에 약하여 추운 겨울 학교 야자시간이 더욱 힘들었다. 천장에 달려있는 히터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긴 했지만 통증을 달래기엔 부족했다. 쉬는 시간에 책상 위로 올라가 서서 천장 히터 바람에 손을 갖다 대고 히터 바람을 쬐곤 했다. 따뜻하면 통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너무 웃기고 특이하다며 웃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날 비웃는 것은 아니었고 당시에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 눈에는 내가 얼마나 특이했을까 싶다.
그 시절은 관절염 전문 병원에 노인들만 있던 시절이었다. 젊은 환자는 그 공간에 나 한 명뿐이었다.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던 시절. 이질감과 소외감. '저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같은 질병이라고요.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이런 젊은 사람들도 있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당신들은 늙어서 고통을 얻지만, 나는 젊어서 고통을 얻었기 때문에 더욱 억울하고 그 시선들이 화가 났다. 늙음이 그들의 죄는 아니지만 그때는 억울했다. 그 이후부터는 버스나 지하철의 노약자석에도 당당히 앉고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도 당당히 탔다. 겉모습이 젊다고 해서 통증이 없는 게 아니니까. 누가 나에게 젊은데 자리를 양보해야지 왜 앉냐고 뭐라고 하면 난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당신, 나보다 더 아프다고 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그땐 그만큼 이런 현실에 화가 나 있었으니까.
당신, 나보다 더 아프다고 할 수 있어?
요즘 이야기
힘들었던 시절 나를 위로해 주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대학교 때 고통에서 도망치듯 밴드 동아리에 가입하여 지하의 곰팡이 냄새와 냉기를 느끼며 밴드 사람들에 빠져 지냈다. 시간이 지나 관절염은 염증 수치도 괜찮아지고 오래 먹었던 약도 끊게 되면서 정기적으로 피검사만 하면 되는 정도로 나았다. 수년간 괜찮아졌던 통증은 출산 후 아기를 키우며 잠시 다시 약을 먹고 모유 수유를 중단해야 했지만 그때뿐이었고 거의 완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거의 정상 생활을 해오던 내가 요즘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아이를 잠시 맡길 수 있게 되어 오랜만에 부푼 꿈을 안고 베이스를 매고 칠 년 만에 합주실에 갔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커서 가는 길이 참 설렜다. 베이스를 잡고 연주를 하려던 순간,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음을 느꼈다. 악기 연주는 손의 유연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피아노 연주도 그렇다. 관절염으로 손의 유연성이 떨어지다 보니 피아노 연주를 잘하는 것을 포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나마 괜찮았던, 손 유연성이 덜 필요하던 베이스 연주조차 포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다니. 나에게 꿈같은 존재였는데.
일상이 바뀌면 멘붕이 온다. 무릎 사이에 두 손을 끼워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스트레칭을 꼭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