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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효원 Feb 10. 2022

"괜찮아요" 병을 아시나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도대체 난 왜 자꾸만 이러는 걸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성찰하기보다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단정 지어버리고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본질은 무엇일까?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애매한 주관식 문제.

서술형이 될지 단답형이 될지는 

내 성찰에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주변에서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분명 괜찮지 않고 언짢음 상황임에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괜찮다. “라는 말을 한다.


마음속에서는 

“너 안 괜찮아! 지금 안 하고 싶잖아. 이해가 안 되잖아!”

하고 외치지만 거절하기는 항상 힘들다.     

왜 그럴까? 

도대체 어떤 삶의 기억이 

나를 거절하지 못하는 

솔직하지 못한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과거에 나는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였고 

항상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어릴 적부터 가진 기질이 

타고난 진짜 기질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강사일을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내가 변화하고 적응하게 된 건 

현실에 맞춰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20살에도 지나가는 사람이 다 날 쳐다보는 것 같고 

그 시선이 두렵고 신경 쓰여 고개를 떨구고 걸었었다.     


차별과 부정에 대한 반복적인 경험. 

타인의 시선으로 형성된 무의식에 자아로

나는 거절하면 안 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내가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독자 집안에 세 번째도 딸이 태어나자 

미역국도 안 끓여 줬다는 할머니.

7년이 지난 후 남동생이 태어나던 날. 

할머니와 친척들은 내가 뒤를 잘? 봐서

(아직도 이해되지 않지만..) 

남동생을 낳았다며 나를 칭찬했었다.

내 존재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은 

남동생 덕분이었다.


언니가 대신 그려준 그림 숙제로 

상을 받았었다. 

대충 그려준 그림이 받은 상이라며 

언니는 비웃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지만 

둘째 언니의 그림에 비해 

내 그림은 보잘것없었다.     


미술 수업시간 주제는 자유 그리기였다.

노란 꽃을 그리고 싶었고 그렸다.

하지만 도대체 뭘 그린 건지 

모르겠다며 선생님이 말했다. 

순간 창피했고 내가 잘못했구나.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그림을 지적하던 손가락만 기억에 남아있다. 

언니가 그려준 그림은 상을 받았지만 내 그림은 지적을 받았다.     


“언니들은 말 안 해도 공부를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연년생 언니들은 공부를 잘했고 

큰 언니는 어릴 때부터 똑똑했다. 

나는 느리고 엄마에게 자주 혼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만들기 숙제를 못해서 학교에 가지 않고 울고 있었다.

엄마는 날 혼내고 행동을 지적하면서도 

나뭇가지와 캔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서 내 손에 쥐어 보냈다. 

언니들에 비해 뒤쳐진다는 이야기를 

엄마는 항상 은연 중에 했었다.


언니들이 다니는 영수 학원에 

동생이라는 이유로 

학원 비를 내지 않고 다닌 적이 있다. 

2+1 보너스 혜택이 나였다.

시골에 살았고 예전에는 그게 가능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학원을 들어갈 때마다 떳떳하지 못했다. 

그래도 학원을 다니며 

성적이 좋아져 반에서 3등을 했었다.


기쁜 마음에 엄마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내게 돌아온 말은 

“그래? 잘했네. 이제야 너도 언니들 따라가나 보네.”

그 말을 듣고 지금껏 나는 

엄마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이었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됐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나는 원래 그랬어야 했다.     


존재 자체 로서의 인정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부터 쌓아온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의 자기 인식이 

나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내 마음보다는 

상대방에 맞춰서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은 척하자니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계속된 ‘괜찮아요’ 병은 

몇년을 참고참다 끝내 거절한 경험을 

몇 번 정도하고 나서야 줄어들기 시작했다.      


작은 기억들의 조각들을 맞춰보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과거의 경험에 기인한 것들이다.


지금 나를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이 있다면 


그건 단지 과거의 경험일 뿐일 수도 있다.     


과거에 갇혀 현재와 미래의 나의 가능성을 놓치지 말자.


이 글을 읽은 당신.

당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발목을 잡는 걸림돌은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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