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월말 마감을 치르고 당당하게 사무실 달력을 뜯었다. 뿌듯함 가득한 자태로 달력을 바라보다가 몸이 굳었다.
7월, 여름방학이다.
아이들의 방학을 앞둔 내 상태를 보면, 지금 내가 감당하고 있는 일이, 사람이, 만남들이 버거운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버거울 때는 방학임을 알고 즉각 회피한다. 이 시기에 회피는 결국 공허하고 텅텅 빈 방학을 초래하고, 아이들을 발전시키고 진일보하게 하는, 경험과 배움이 조화롭게 배열된 다이내믹 앤 럴닝(learning) 앤 펀(fun) 앤 코지한 방학을 보내게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밀려온다. 방학시즌에 연남매가 '심심해'라고 중얼거리면, 그게 1년 내내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일지라도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다.
상태가 좋을 때, 삶이 내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가는게 아니라 내가 앞장 서서 걸어가는 시기에는, 어제처럼 7월 달력을 직시한다. 몸은 굳었을지라도 머릿속은 컴퓨터 부팅음을 내며 돌아간다.
오늘 아침, 나는 동네 체육센터의 방학프로그램을 받아왔다. 연남매에게 '우리는 수영, 탁구, 농구, 라켓볼이라는 선택지가 있어. 자, 방학 아침엔 무슨 운동을 해볼까.'라며 계획 수립의 시작을 알렸다. 연수는 '나 방학하면 아침에 독서실에서 공부한 다음 줄넘기 1,000개 할건데? 고르라면, 수영'이라고 대답하고, 연욱이는 '난 수영 별로야. 탁구'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연수가 아주 원론적이고도 예상밖의 질문을 한다.
'근데-운동 중에서 골라야 하는거지?'
난 이 질문이 너무나 새로워서 신기할 지경이다. 방학을 하면, 아침에 학교를 안가니까, 그 시간이 드디어 비니까, 무엇을 해야할까? 그렇다, 시간없어 못 배운 운동을 하면 된다. 역시 체력증진과 스킬향상은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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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해보면 관장님께선 방학을 진정으로 좋아하셨다.
드디어 새벽훈련으로 정신력을 무장할 수 있다며 방학만을 기다리셨다. 태권도장에서 시범단은 오후 6시 30분 타임에 운동을 했었는데, 방학이 되어도 도장의 핵심처럼, 심장처럼, 다리처럼 중요한 시간에 배정되어야 한다는 관장님의 철학에 따라 새벽 6시 30분 타임으로 옮겨졌다(쓰고있는 나조차 이제 믿겨지지 않는다, 방학이 되었더니 연욱이가 새벽 6시에 깨서 도복을 입는 상상을 해본다).
여하튼 체육센터 방학프로그램 등록일에 선착순을 반드시 성사시키기 위해 계획을 짰다. 그 때 택배가 도착했다. 연수의 수학문제집이다. 어제 수학원장님께서 방학 땐 진도를 열심히 나가야한다고 강조하셨다. 내가 수학원장님을 선택한 이유도.. 생각해보면 원장님의 인스타에 새벽 달리기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여기는 태릉인가 싶어서 아이들과 1학기 복습 진도를 같이 세워보자고 제안했다. 남편에게도 영어실력 증진 계획을 세워달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지금도 글을 쓰면서 연욱이가 탁구를 잘 치게 된다면 정말 신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름방학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