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되면 회사에 수습생들이 온다. 인턴 활동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 수습생을 받게 되는 중견이 되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학생을 만나는 신남을 티내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했다. 대체적으로 수습생 지도는 번거로운 번외 업무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렇게 신난 팀원은 나밖에 없었고 옆자리 팀원들은 자신들에게 배정된 수습생들도 내가 같이 지도하면 어떻겠냐고 따뜻한 말투로 제안했다. 오! 좋아, 라고 외치면 안될 것 같아서 잠깐 생각을 해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지점장님이 '1인 2 수습생 원칙'으로 배정할 것을 명하셨다.
한편! 학생들은 자기를 반기는걸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능력이 있나보다. 정장을 갖춰입은 학생들이 들어서면 난 매우 절제하며 미소를 지어주고, 지도할 때도 제법 근엄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무섭다는 피드백을 할까봐 늘 걱정하곤 했다. 그러나, 수습이 끝나고 지점장님이 수습생들의 만족도를 물으면, 늘 우리 방 배정 수습생들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소리를 지른다고 알려져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럼에도 지난 2년간 수습생을 받지 못해서 매우 의기소침해있었다. 팀장님은 '니 방에 좀 민감한 CASE들이 몇 개 있어서 학생들 보내기가 어려워서 그래'라고 했지만, 난 '민감한 CASE를 주셨으면 수습생도 배정해주셔야죠!'라고 궁시렁 댔다. 팀장님은 내게 일을 시켜놓고 어떤 배려를 해주면 내가 좋아할까 고민고민하셨던 모양인데, '수습생 배정 열외'라는 대박 제안에 되려 삐져버리는 나 때문에 너무 혼란스러우셨다고 한다.
이번 주! 3년만에 학생들이 배정되었다. (5학년 연수는 이제 이 학생들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학생들은 각종 숙제를 하고, 견학도 간다. 우리 지점 총무는 촘촘히 일정을 잘 짜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여러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목요일 점심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생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가는 김에 이쪽 학생도 데려가서 같이 먹으라는 청탁이 여기저기 들어온 탓에, 그들로부터 카드를 받고 다 데리고 갈까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우리 방만 오손도손 갔다.
수습생들은 학교수업이 얼마나 힘든지, 이번 방학은 얼마나 놀고 싶은지, 그래서 수습과제 하기가 얼마나 싫은지(이 말도 진짜 했다ㅎ) 이야기해주었고, 오늘 수습을 마치면 같은 지점 수습생들과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며 신나했다.
그 중 여학생은 오늘 수습을 마치면 내일은 진정한 방학 첫 날로 엄마와 LG트윈스 경기 직관을 간다고 했다. 내가 수줍게 고 2때 LG 광팬이었던 얘기를 하자, 2002년, LG가 한국시리즈에 간 그 해를 말하는거냐고 했다. 당최 나와 띠동갑쯤 되는 이 아이는 자신이 약 6살 때 일어난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그 옆에 남학생은 통학거리가 엄청 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도 자신은 술도 안마시고 여친도 없으며 축구말고는 별다른 활동을 안해서 집에 가도 일몰 전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렇게 다른 두 학생이 같은 전공을 가지고 같은 회사 수습으로 들어오다니.
학교를 졸업하고 내 색깔 그대로, 오각형, 별, 팔각형 제각각 모습 그대로 직장에 들어온 신입들을 본다. 그들은 나처럼 형형색색 찬란한 원색을 자랑하다가 어느 날부터 깎이고 데이고 치여서 그 모서리가 매우 무뎌진다. 물론 모두 파스텔톤이 되어 너그럽고 배려하는 둥근 도형이 되진 않는다. 누군가는 한방향으로 깎여나가다가 더 뾰족해져서 살상무기가 되기도 한다.
더 오래 그 색깔대로, 모습대로 살아가는 기대를 해본다. 굳이, 비스므리하고 어얼추 스며들어가는 그런 모습말고, 각기 다른 취미에 대해 논하며 배워가고 알아가며, 각자 나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균형을 잡는 방법이 되는 그런 날을, 이들이 조금 앞당겨주겠지.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