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Jun 28. 2022

내가 만난 사람들

07.





  소울 메이트는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모든 운명이 그렇듯이. 


         

  S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나의 친구 J의 직장동료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직장동료였다면, 그러게, 그냥 그런 사람이 있구나, 했을 테지만, 그녀는 내게 꽤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이곳에 밝힐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몹시 조심스러운 동시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무엇보다 사람을 챙기는 경우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인상을 심어준 사건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 그녀를 직접 마주하거나, 어떤 경로로든 그녀와 인사 한번 나눌 기회조차 좀처럼 오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이름도 모르는 S에게 혼자서만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고쳐지지 않는 이상한 습관이랄 것이 있는데 랜선으로는 누구보다 살갑게 상대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처음 보는 사람이고 그 상대가 나를 모른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꼭 이전에 알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말을 붙이곤 했다. 그래서 나는 J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S의 인스타그램을 알게 되었고, 팔로우를 했고, 습관이란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든 시작은 그렇게 시시했다. 어떤 우연과도 같이.        

  

  어떻게 말을 걸었는지, 무슨 말을 걸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물꼬를 트는 것이 내게는 너무 쉬웠다. 그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친해지고 싶었다. 씀씀이가 멋지고 진중해 보이는 S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대단한 사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나는 종종 올라오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게시물들을 보면서 사람이 참 밝고 개성 있지만, 또 잔잔하고 고요해 보인다는 생각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습다. 누구를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은 어째서 이토록 쉬운지···. 나는 종종 그녀의 스토리에 이모티콘을 보내거나 짧은 안부를 전했다. 어쩌다 우리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좋아요 버튼 대신 내가 그녀에게서 느끼는 나만의 생각을 붙여 넣곤 했다. 내가 섣부르게 S를 혹은 S의 감정을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친하지 않기에 더 솔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잘 몰랐던 사이었기에 나는 그녀를 속이지 않았고, 그녀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단단한 벽을 녹이고, 기꺼이 상대를 자신의 바운더리에 들였다.  

   

우리는 우리의 벽이 철옹성이나 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단단해 보이는 흙으로 빚은 벽이었던 듯싶다. 그래서 서로의 말을 듣는 동안 그 벽을 손으로 조금씩 갉아 내고, 서로 이야기를 하며 흘려보낸 비로 그 벽을 녹여 말랑한 진흙으로 뭉갠 것이다. 그 진흙을 발로 평평히 다져 우리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우리는 똑같이 그 진흙 바닥에 발자국을 남기고, 손톱에 모래를 박아 넣고 지낸다. 물론 이 과정은 아주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예민하고 경계심 넘치는 나나 S 중 누구도 채근하지 않았다. 다만 우린 우리의 관계를 알았다.   

 

  우리가 어떤 우연과도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가난을 말하는 것이 싫었다. 나는 불행을 퍼트리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도 인스타그램이 내 일기장이라는 핑계를 대며 종종 섣부른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말들을 적어 업로드하곤 했다. S는 ‘나도 안다’고 말하면서도 건방 떨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사정을 몰랐지만, 그녀가 빈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자주 감정에 빠져있고, 줄곧 스스로를 비난했지만 그녀는 결코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우리의 예민함, 우리의 가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동안에 S는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녀와 내가 보낸 20여년의 상이한 시간들이 빈번하게 외로움이라는 감정 아래 겹쳐지곤 했다. 아무도 이따위 감정은 공감할 수 없을 거라는 내 오래된 착각은 그녀 아래서는 늘 희미해졌다. 상황이나 감정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S는 꼭 내가 말하듯 말하고, 내가 느끼듯 느꼈다. 정말 이런 게 가능한가 싶을 만큼. 그래서 나는 도무지 이것을 우연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영혼의 단짝은 그렇게 만날 리가 없으니까.     


  S와 친구가 되어 지낸 짧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내가 한 무수한 이야기들. 그녀는 내 자격지심, 내 퉁명스러움과 까칠한 말투까지도 받아들였다. 우리는 희한한 것에 낄낄거리고, 우리는 우리의 성격을 농담거리로 만들고, 우리는 우리로서 존재해도 그리고 그게 다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우리는 길거리에서 시끄럽게 웃고, 우리는 피시 앤 칩스를 해 먹고, 초밥과 마라탕을 먹었다. 우리는 밤에 나란히 산책을 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하철 개찰구에서 안녕을 고하고, 우리는 온갖 밈들을 서로에게 던지며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샘과 패트릭은 어디에 있을까를 꿈꿔왔는데, 나는 도대체 언제쯤 나의 올리버가 나타날지 기다려왔는데, 정작 그 존재는 이미 내 옆에 있었다.


  S와 걸을 때, 내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는 S. 언제나 내가 정답을 말해주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S. 난 만인에게 심지어 나에게 조차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S와 있을 때는 그런 것이 별로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녀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던지는 질문들, 내 답변을 성실히 듣고 또 다시 돌아오는 가지 친 물음표들에 대답하며, 난 그녀와 언제까지고 그 말랑한 진흙을 녹이며, 손톱에 박힌 모래들을 털고 싶었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예민함을 사랑하게 될까? 언젠가 서로가 서로를 넘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까? 


아니래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머리를 붙잡고도, 얼마나 현실이 녹록지 않은지 멍하니 빈 화면과 깜빡이는 커서와 줄무늬 노트를 보다가도 우리는, 잠들지 못하고 드넓은 천장을 바라만 보며 아득해지던 우리는, 우리는 끝내 카페테라스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나뭇잎을 통과하는 햇빛에, 눈이 쌓이는 소리가 들릴만큼 고요한 겨울밤에 아주 아주 쉽게 행복을 말하고, 아주 아주 편리하게 감동했으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리고 S가 그런 사람이라서 우리는 운명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폭풍우를 견디면서도 바람이 시원하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 공간을 느끼는 것처럼, 사실 우리는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낭만만을 좇는 사람들 일지 모르지만 그게 나뿐만이 아니라서, 아니 하필 함께하는 사람이 S라서 난 모든 것이 괜찮았다.      


  언젠가 우리가 밟고 있는 말랑한 땅이 굳어 우리의 발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다시 그 땅이 말랑해지고 다시 굳고, 말랑해지고 다시 굳어 우리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녹음이 돌아올 때까지, 그녀가 내게 선물해준 검은색 장갑과 그녀의 빨간색 장갑을 나란히 끼고 가만히 앉아 차를 마시는 날들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질 때까지.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아주 영원토록 그녀와 영혼의 단짝이면 싶었다.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면 좋겠다.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운명처럼.     





작가의 이전글 내가 만난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