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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an 15. 2023

[단미가] #18. 우러나온 진한 '간절함'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18

우러나온 진한 '간절함'


몇 주 아니 몇 달은 된 것 같다. 마음의 늪에 빠진 연이는 이 슬픔과 외로움이 그저 지나가길 바랐다. 별 것 아닌 그저 감기 같은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주가 되고 몇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 번 꼴로 마음의 눈물이 났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마음에 차버린 그렁그렁 눈물들은 흘러넘쳐 연이를 침식시켰다. 그래도 이 모든 순간들이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연이의 심각한 착각이었다. 


눈물은 강이 되었고, 바다가 되었고, 대지를 적셔 모든 땅을 무르게 만들어 늪처럼 되었다. 연이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들에 영향을 주었다. 따스함을 가득 벤 영원한 태양도 식어버렸고, 석양 아래 멋들어진 큰나무 아래 있던 벤치도 어느샌가 가라앉아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잠식하는 데도 연이는 무엇을 할 수 없었다. 연이를 지탱하던 따스함의 근원인 큰나무의 마지막 남은 잎들이 그 마음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그 어둠이 드디어 마음을 넘어 현실 속의 연이의 몸을 탐내기 시작했다.


마음의 어둠은 연이의 몸을 아프게 했다. 바쁠 때는 의식이 살아 있어 모르다가 집으로 가 몸을 뉠 때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이 연이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흔히 지나가는 감기라면 벌써 지나도 지났을 텐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마음의 어둠은 연이를 놔줄 생각이 없었나 보다. 열정을 잠식하고 따스함을 잡아가두더니 이제는 연이의 몸마저 어둠에 빠져들게 하는 그 근원이 뭘까 궁금했다.


몇 주 전부터 금요일 밤부터 빠져든 잠은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회복이 될 정도로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이는 남아 있는 힘을 짜내어 연이의 마음에 있는 그 어둠에게 묻기 위해 잠에 빠져들기 전에 따스함을 최대한 응축하기 시작했다. 이내 몸이 지쳐 잠에 빠져들었다.


영원히 빛나는 태양이 지고 있었다. 석양이 하늘을 울긋불긋 수놓고 있었다. 연이는 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가장 따스함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둠은 연이의 응축된 따스함을 점차 어둠의 조각으로 만들어 따스함을 부수고 있었다. 연이의 몸에 어둠이 닿고 있었다. 발밑에서부터 허리, 몸통, 목까지 올라온 어둠은 연이를 흔들어 깨웠다. 


"왜 가만히 있지?"

어둠이 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이다. 연이는 그 물음에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한 물음이 아닌 것 같은데."

연이는 어둠에게 대답했다.

"다시 묻지. 왜 너 자신을 보호하지 않느냐?"

뭔가 저항하는 것이 맞을 터이지만, 그 어둠의 정체를 알지 못하니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든 어둠이 몰려올 수 있지만, 그 원인을 알고 싶었던 연이는 그 어둠을 응시할 뿐이었다.

어둠 속 칠흑 같은 어둠, 그 너머의 어둠을 보고 싶었다. 

대답이 없자, 어둠은 천천히 입, 코, 눈까지 잠식해 갔다. 그리고 이내 연이 전체를 잠식했다. 어둠은 자비가 없었다.


어둠에 모든 것이 잠식되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이 마구 흘렀다. 몸의 통증은 연이를 짓눌렀다. 그러다 연이의 심장까지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그렇게 연이는 잠시 숨조차 쉬기 힘들어졌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큰나무 아래 벤치는 따뜻했다. 수많은 잎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의 눈부심은 분홍빛의 반짝임을 만들었다. 눈을 살짝살짝 간지럽히는 따스한 햇살은 연이를 흔들어 깨웠다. 


"함께 하자. 뭐든."


누구지? 연이에게 말을 거는 존재. 그 따사로운 존재. 연이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다. 어릴 적 어두운 방에 들어가기 싫어 큰나무 밑에서 한참을 놀다가 어머니가 오실 때 되면 들어가던 그때를. 그때마다 꼬꼬마 연이를 지켜주던 듬직하고 아주 키가 큰 나무를. 평상에 누워 큰 나무를 올려보던 그때를.


어둠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둠이 앗아간 큰나무도 그 아래 벤치도 영원히 빛나는 따사로운 태양도 점점 잠식된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몸의 통증은 차츰 사그라들고 있었다. 연이의 마음의 열정도 어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 내달릴 것이다. 함께 하고픈 모든 일들과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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