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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24. 2021

[교행일기] #50. 멀티가 부럽다

멀티가 부럽다


학창시절 연이는 숙제가 있으면 그것을 끝내놓고 노는 스타일이었다. 뭔가 찜찜하게 할일을 놔두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시험기간에는 자신이 정한 공부범위나 공부량이 채워지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이런 성격 탓에 공시생 시절에도 자신에 대한 철저한 자기절제로 공부량을 끝마치려고 했고, 그게 안 되면 계양산에 오르는 약간의 벌 겸 운동을 시작했다. 열정이 식거나 체력이 달린다 싶으면 그곳에 올라 의지를 다지고는 했다.


동기 S와 동기 B까지 나가고 의원면직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그들이 나간 상황만 생각했었다. 안타깝고 쓰라린 경험을 들추고 싶지 않아 가슴 한 편에 묻어두려고 했다. 하지만, 연이가 의원면직이 아닌 남아 있는 것을 선택한 이상 그들의 상황만이 아닌 뭔가 다른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원에서 그들과 연수를 받으며 쉬는 시간에나 강의를 기다리는 시간에 얘기를 한 것을 떠올려 그들과 연이의 상황에 공통점을 찾아보려 했다. 데이터가 부족했지만 결론에 도출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들도 연이와 마찬가지로 일이 시작이 되면 끝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형적인 요즘 시쳇말로 '범생이 스타일'이었다.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고 옆으로 새지 않고 우직하게 일을 한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융통성 없고 요령이 없는 대쪽 같은 스타일이라는 반대 의미도 있다. 이런 성격이다보니 한 가지 일이 주어지면 정말 빈틈없이 하게 되는데, 학교 일이 그렇게 하나만 해서는 되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상황이 주어지고 서로 다른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보니 그것을 자신의 업무와 결부지어 해내야 할 때는 문제가 발생했다.


하루에 끝나는 일이 있는 반면, 일주일에 걸쳐서, 한 달이 걸쳐서 마무리가 되는 일도 있기도 했다. 그러니 머릿속에 그것들이 따로 굴러가는 멀티형 인간이 되어야만 학교 근무가 소위 말하는 적성에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연이도 그게 안 되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사람은 변한다. 변하지 않아서 도태되어 이곳을 떠나거나 변해서 적응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된다. 연이는 후자를 선택했지만, 변화에는 여전히 불안이 따라오고

두렵다.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동시다발적으로 멀티가 된다는 거지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했다.


그런데,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누군가 그렇게 할 수 있고, 실제로 한다면 그것을 따라하는 것은 연이에게는 자신 있었다. 연이의 장점 중의 하나는 '따라하기'였다. 뭐든 따라한다는 것이다. 일단 솔이 주무관님의 전화받는 것도 따라했기에 가능했던 경험을 살려서 다른 것도 모두 따라하기로 했다. 실장님의 장점과 김 주무관님의 장점들을 모두 따라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교행직 꼬꼬마 연이이니 따라하다보면 분명 예전의 연이가 못했던 그 멀티라는 것이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도 일만 하고 있을 연이가 아닌 집에서는 쉬고 학교에서는 열심히 일을 하는 연이가 되고 싶었다.


오늘도 일과 삶의 경계에 선 연이는 '멀티'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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