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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25. 2021

[교행일기] #51. 하계세미나

하계세미나


말복이 지나고 나니 갑자기 서둘러 열기가 푹 가라앉았다. 연이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씨가 적응이 안 되는지 반팔로 드러난 팔을 살짝살짝씩 비비며 열을 내었다. 파랑버스만 타고 다녔을 때는 몰랐는데, 아마 그때도 사람이 많아서 에어컨의 시원함이 느끼지 못했을 테지만, 지하철에서 나오는 시원함은 파랑버스와는 차원이 다르게 한 10도는 낮은 냉동고에서 나오는 냉기 같았다. 바깥의 열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사람들이 딱 지하철에 들어서는 순간 시원하다며 연신 좋아하다가도 10분 정도 지나면 하나둘씩 가방에서 얇은 셔츠나 카디건을 꺼내 몸에 둘렀다.


연이는 살짝 얼어버린 몸을 일으켜 내릴 역에 도착하자 지하철을 뒤로하고 지상으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지하 1층에서 지상으로 나오자 이내 선선한 공기가 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공기의 냄새와 기운에서 여름의 열기가 아닌 가을의 울긋불긋함이 살짝 묻어났다. 몇 개월간 파랑버스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어오면서 다짐을 하거나 오늘의 할 일을 떠올리며 왔었다. 한기가 잔뜩 묻어있던 1월, 2월을 지나 봄의 따뜻한 향기가 스며든 3월에서 5월이 지났고, 6월, 7월의 싱그러움과 열기를 머금은 공기가 연이의 발길과 함께 했었다.


오전 업무가 어느 정도 마치고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카톡이 우르르 폭탄처럼 열너댓 개가 올라왔다. 화담숲에서 찍은 사진들.




7월 방학식과 함께 학생들이 빠져나간 오후에 교문밖 차도에는 버스 한 대가 OO초등학교 교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학기에 학교의 안전과 학생들의 학습지도에 힘쓴 교직원을 격려하기 위해 교장선생님이 기획한 하계세미나가 있는 날이었다. 장소는 경기도 광주 화담숲이었다. 업무 처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 더욱 줄어 연이는 학교 밖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 간다는 설렘보다는 업무의 종종거림의 압박이 살짝 짜증으로 변하고 있었다.


전날 화담숲은 약간 오르막이 있어 편한 복장에 운동화가 필수라는 전체쪽지가 와서 그런지 출발시간이 되자 하나 둘 옷을 갈아입은 선생님들은 한층 편안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현관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이도 서둘러 따로 챙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는 모여 있던 선생님들을 따라 교문 밖에 서 있던 버스에 탔다. 교직원 친목회에서 회비로 약간의 다과와 음료수를 구입한 것을 버스에 싣고 마지막 일을 마친 선생님이 타자 인원수를 세기 시작했고 조금 뒤 버스는 학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연이는 오전 업무에 깔아지는 몸과 꿈속으로 불러들이는 의식으로 잠에 빠졌다. 거의 1시간 30분이 지났을 무렵, 버스의 진동에 깬 연이는 눈앞에 펼쳐진 녹색의 푸르름에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버스가 정차하고 내린 곳은 옆쪽 비탈진 산은 겨울철 스키를 타는 곳이라 했고, 앞에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를 기점으로 1시간의 자유 탐방시간이 주어졌다.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은 완만한 언덕이었지만, 한낮의 햇빛에 노출된 사람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올라가지 않고 카페에서 기다리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무가 만들어낸 푸르름과 싱그러움에 이끌려 한 발짝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노레일이 돌 때마다 '나 좀 데려가' 하면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숲 산책코스를 따라 움직이고 내려오니 4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다들 카페로 몰려들어 얼음이 들어간 음료를 하나씩 주문해 들고 학교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꽃을 피웠다.


연이는 사진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해를 앞에 놓고 찍어야지 얼굴이 화사하게 나온다고는 하지만, 연이에게는 매번 졸업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런 곤욕이 따로 없었다. 연이에게는 햇살에 눈이 부셔 항상 미간에 골이 깊게 파일 정도로 찡그린 사진만 남게 했다. 환하게 웃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오늘도 누군가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사진을 찍히느니 찍는다고 하면 찍지 않을 수 있어서 연신 휴대폰 사진 어플의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연이 말고 다른 한 분도 사진사 역할로 찍었었는데, 그분이 그때 사진을 단체 카톡으로 보낸 것이었다.


카톡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니 그날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포즈로 그날의 기억을 표현하고 있었다. 연이가 찍은 사진들을 찾아보니 7~8방을 연신 눌러댄 것이라 아주 리얼하게 포즈를 취하기 전부터 담겨 있었다. 연이는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취사선택은 그들에게 맡기고 그날의 사진을 모두 선택해서 그들에게 보내줬다.


다음에는 연이도 그 사진 속에서 사람들처럼 활짝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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