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와 혼삶, 경제적 선택인가
장기적인 1인 가정을 준비하는 나는, 결혼해서 사는 친구들 만큼 미래를 대비하려면 혼자서 두 배의 노후자금을 준비해야 한다. 혼자서 집세를 부담하고 손 떨리게 비싼 가전을 사야할 때면, 역시 여럿이 살아야 비용을 나누고 자원을 아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라는 선택이 의외로 경제적일 수 있다. 최근의 1인 가구, 1인 여행, 1인 창업, 1인 미디어 같은 흐름을 단순히 개인화 트렌드로만 볼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밑바닥에는 경제성이라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기로 결정할 때는 경제적 계산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단순히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선택지가 아니라, 집 마련·출산·양육·교육·양가와의 관계 유지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패키지다. 이를 모두 감당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소득을 훨씬 뛰어넘는 자원이 필요하다. 반대로 혼자 산다는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삶’을 영위하겠다는 현실적인 결단에 가깝다. 주거비를 나누지 못해 월세나 전세가 상대적으로 비싸 보일 수 있지만, 그 대신 아이 교육비, 결혼 유지비, 가족 단위의 사회적 지출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계산의 결과다. 한 명의 소득으로 한 명의 삶을 꾸리는 단순 구조는 때로 불안정해 보이지만, 사실상 자기 삶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일 수 있다. 물론 혼자 사는 데도 예상치 못한 비용은 생기지만, 적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명확히 알고 지출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삶은 무모한 선택이 아니라 계산 끝에 나온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점심값을 각자의 카드로 따로 계산하는 것은 물론, 친목 모임 자리에서도 술을 마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회비를 다르게 정산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누가 더 내고 덜 내는 불균형 자체를 불편해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니 꺼 내 꺼’를 분명히 하는 건 사소한 금전 문제를 넘어, 관계 속에서 공평함을 지키려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는 1인 가구가 스스로의 생활비를 온전히 책임지며 ‘내 몫’을 분명히 계산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 단위로 살아가는 흐름 속에서, MZ세대가 보여주는 치밀한 정산 습관은 단순한 짠돌이식 절약이 아니라 자기 삶의 경계와 책임을 선명히 그려내는 문화적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환경·비용·시간이라는 제약 안에서 무의식적 계산이 이뤄진다.
친구와 외식할 때는 식당까지 이동하고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포함된다. 반대로 혼자 밥을 먹으면 식사와 이동에 드는 시간이 줄어든다. 회사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 분업의 장점이 생기지만, 동시에 조율과 마찰, 시간 지연이라는 비용이 발생한다. 반대로 혼자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만큼 효율과 속도에서 앞설 때도 있다.
“나는 틀린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다. 우리는 틀린 답을 내기가 어렵다. 우리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울도록 설계된 존재이며, 이미 본능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두려워한다. 혹시 틀린 길을 갈까, 후회하지 않을까 망설인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어련히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근거 없는 위로나 낭만적 주문이 아니다. 오히려 불리한 선택을 고집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 나 자신의 선택을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긴 셈 아닌가?
어떤 선택이든 옳고 그름은 없겠지만, 심지어 잘못 택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실패조차도 장기적으로는 최소비용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계속 혼자 살아도 괜찮은 걸까’ 라는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질문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선택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러한 논리가 꽤 위안이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