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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Sep 13. 2022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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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은 헤어지지 말자. 아직 난 널 사랑할 시간이 한참은 남은 것 같아,," 여자가 말했다.

남자가 답했다.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내 마음은 상한 지 오래야.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통조림 캔처럼."

"그럼 아직 온전한 내 마음은 어쩌라고, 이대론 싫어. 처음 만날 때 우리 둘 사이 합의로 시작한 만큼 최소 내 남은 마음이 지속될 시간과 이미 끝나버린 네 시간, 그 중간 지점까지만이라도 더 만나고 헤어져."

"사랑은 둘이 하는 거라며, 내 마음과 네 마음이 합쳐진 게 사랑이라면 이미 한쪽이 썩어버렸을 때 그 사랑은 전부가 썩은 거나 마찬가지야. 과일이 한쪽만 상해도 그건 그냥 상한 과일일 뿐이잖아."

"내 마음은 오롯이 그대로인데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해? 그건 너무 억울해."

"그게 싫으면 지금 네게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거야. 사랑은 통조림 속 과일과 달라서 네 마음은 갇혀있지 않으니 어디로든 갈 수 있지. 거기서 넌 너만큼 마음이 오래가는 사람을 만나 함께 행복해질 수 있겠지. 만약, 그 사람의 마음이 너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면 이번엔 그 사람이 네게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고,, 내게서 겪었던 불평등한 관계가 또 다른 불평등함으로 상쇄되는 거지. 그 과정에서 넌 지금의 나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되려 안도할 수도 있겠지. 아마 제일 좋은 시나리오는 그 사람의 사랑이 너무 크고 넓어서 네 마음이 조금씩 상해 갈 지라도 상한 것도 모른 채 우리는 항상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게 너에겐 제일 좋은 선택일지 몰라."

"내가 그런 걸 착각하고 산다고?"

"넌 이미 그랬어. 나와 만나는 내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하며 행복해했으니까."

"네가 지금처럼 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할 수도 있었어!"

"애초에 영원하다는 게 정해진 결론 같은 게 아닌데 넌 그게 당연하다는 가정하에 내 마음이 변한 걸 탓하고 있어. 사람의 삶조차 유한한데 영원한 게 어딨어."

"내가 말하는 영원이란 사후세계 같은 게 아니라 앞으로 내게 남은 생 그 전부까지를 말하는 거야-!"

"그 남은 생 동안의 영원도 어쩌면 착각일 수 있지. 실은 한쪽의 마음이 식어가려는 순간에 불의의 사고로 한 사람이 죽어버렸을 때. 남은 사람은 그 사랑을 영원했다고 착각하며 평생을 보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야, 실은 그게 아닌데."

"그러는 너는 착각하지 않아? 네가 지금 상했다고 주장하는 마음이 네가 느끼는 착각일지도 모르잖아?"

"그럴 리가, 난 내 마음이 진작에 상하고 소멸해 버린 걸 한참 전부터 느끼고 있었어. 그게 남아있었다면 내가 왜 못 느끼겠어? 혹여 만약에라도 다음에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새롭게 생겨난 마음이지 이전의 사랑은 아닐 거라고 믿어. 그리고, 난 이 모든 것들이 착각이라 해도 괜찮아. 난 그 착각 속에서 내게 맞는 정답을 찾았으니까. 그러니 우리 각자의 착각 속에서 서로 다른 행복을 찾기로 하자. 이 사랑은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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