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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Aug 30. 2023

목표 없이 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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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년 만에 서울에 왔다.

이로써 지금까지 총 세 번째 상경한 셈인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상경은 모두 수험생활을 위해서였다.

고단한 시간들을 버텨낸 결과로 두 번의 취업에 성공했으나 그 시간 동안 20대 때 해봄직한 다양한 경험들을 놓친 것도 많았다. 그런 기억들이 없으면 못 사냐라고 한다면 그런 건 아니지만 오랜 수험생활 탓에 20대 시절 내 기억의 대부분은 작은방에서 홀로 책을 보다 잠들었던 순간들이다.


 그나마 이전 직장생활을 하는 몇 년간 취미생활이나 여행 등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으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은 나도 모르는 사이 잃어버리고 말았다. 수험생활을 하던 동안은 수험생으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으나 정작 원하던 곳에 입사한 뒤엔 직장인으로의 정체성에 맞지 않게 퇴사를 꿈꾸는 사람으로만 보내왔다. 그러는 동안 건강이 점차 망가져갔고, 업무는 몇 년이 지나도 매일이 낯설었으며 이게 진짜 내가 하는 일인가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나는 왜 남들만큼 무탈하게 적응하지 못했나 하는 자책에 퇴사하는 순간까지 괴로웠다. 또 한 번 실패했다는 기분 탓인지 퇴사를 한 뒤에도 퇴사후유증이 남아 저녁에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기껏 잠에 들었다가도 심장이 쿵쾅거려 잠을 깬 뒤 한참을 스스로를 다독이다 지쳐 다시 잠들곤 했다.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다 간 앞으로 한참 남았을 나머지 삶을 살아갈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싶어 막막하고 두려운 날이 많았다. 이런 두려움을 품은 채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이지 내가 가 본 적 없는 어두운 어딘가로 흘러들어 가 버릴 것만 같았다. 스스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걸 막고자 서울로 올라오며 단단히 다짐을 했다. '내가 원래의 나로 괜찮아질 때까지 그동안 스스로에게 주지 못했던 관심을 듬뿍 주자. 뭘 하든 절대 서두르지도 말자.'

마음껏 시도해도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순연한 것들을 실컷 즐기고(예를 들면 하루종일 산책하기) 그런 후에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속도에 맞춰 어디든 천천히 다시 한 발 씩 내딛겠다고.


그간 뚜렷한 목적지를 정한 채 달려왔던 시간들을 돌이켜 봤을 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걸 이뤄냈던 순간 행복했지만 그 행복이 이후까지 이어지진 않았다는 걸 알았기에 이번만은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을 멈추고 싶었다. 목표가 있는 것이 잘못이라기보다 내가 그 목표를 이루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숙고의 시간, 지난 날들에 대해서도 더 이상은 내가 했던 선택들을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긴 시간 동안 내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이행했음에 만족하며 흘려보낼 여유가 꼭 필요한 순간이라고 느낀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고 곧장 들었던 생각은

원래 처음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을 무렵에는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감상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엮어 멋진 글들을 써내고 같은 하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자 했었다.

아무렴 이상과 현실은 달라 브런치에 처음으로 제일 길게 쓴 글이 나로 시작해 나로 끝나고 말았다.


변명을 하자면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 나도 포함이 되어 있으므로 흥미는 떨어질지언정 처음의 취지를 아주 벗어나진 않았다는 것, 아직은 타인에게로 관심을 돌릴 여력이 부족해 나에 대한 정리를 일정 부분이라도 매듭짓고 나면 타인의 삶에도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관심과 애정을 가진 글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변명의 근거로 삼아 본다.


한 줄 요약 : 내 지난 시간들의 나열에 불과한 글을 쓰게 되었지만 나의 소중한 구독자분들께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테니 지켜봐 달라는 작은 어필 + 아직은 준비가 덜 되어 걸러지지 않은 무모한 고백 같은 일기형식의 글이 앞으로도 한동안 난무할 예정이라는 죄송함을 담은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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