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 오랜 시간 개와 함께 지냈지만 고양이가 있는 내 일상을 꿈꾸기 시작했던 이유는 어린 고양이들을 구조하고 잠시나마 같이 보냈던 날들이 기억에 남을 만큼 특별했기 때문이다.
(나비 이후에도 사고로 어미를 잃은 아기 턱시도 고양이를 잠시 임시보호 했던 경험도 있다.)
고양이와의 동거, 그것에 대한 열망은 동생도 나만큼이나 강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주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가깝게 지내던 어르신이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시고는 어느 날 깜짝 선물을 준비하셨다. 살고 계신 동네의 주유소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고, 그중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는 털이 까만 아기 고양이를 두꺼운 과자박스에 넣어 들고 오신 것이다.
대학생이던 동생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이 소식을 사진으로 접하고 기뻐하며 몹시 흥분했던 걸로 기억한다.(문자에서만 그랬을 수도)
까미와의 첫 만남은 설명이 되지 않는 물음표가 그 작은 상자 앞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지? 이 아이를 어쩌지? 너무 작고, 귀엽고, 안쓰럽고. 그런데 멋지고... 이 아이는 대체 뭐지?
호박색의 눈을 반짝이며 잔뜩 웅크린 몸으로 귀를 쫑긋 세워 나를 올려다보던 까미.
사료를 주문하고 고양이 관련 용품을 준비하는 것은 동생과 나의 몫. 까미는 하루 만에 경계를 풀고 내게 마음을 열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낯을 엄청 가렸다. 발톱을 숨기고 드러내는 조절이 힘든 아기 고양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워낙 겁이 많아 다가가려고 하면 도망치고 위험한 곳에서 옮기려고 할 때마다 까미의 발톱에 긁혀 상처가 났다. 그럼에도 밉거나 싫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집에 적응한 후 까미는 자신의 세상이 된 공간에 애정을 표현했고 화장실모래가 있는 곳, 밥그릇이 있는 곳, 놀이박스가 있는 곳 외에도 발길 닿는 곳 어디든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이것이 맞나 싶기도 했지만 가족이 같이 살 수 있으려면 이 과정이 필요하다 여겼다. 그렇게 까미의 중성화수술을 결정했다. (발정기가 찾아오면 울음소리가 소음이 되어 주위에 민폐를 주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울부짖어야 하는 고양이도 몸이 고되다고 한다)
순순히 따라나섰다가 예상치 못한 아픔을 겪은 까미는 며칠 동안 사람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마음이 풀려 다시 순하고 장난기 많은 까미로 돌아와 줘서 참 고마웠었다.
나는 까미가 영리하지 않아서 좋았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공격적이지 않은 순한 성격과, 가끔 노견이 된 미소를 귀찮게 한 적은 있지만 괴롭히고 못되게 군 적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유난히 털이 많이 빠지는 시기에는 옷이며 이불에 붙은 털을 청소하느라 번거로웠다. 하지만 거실 한가운데 유리문 앞에서 마당에 내려앉은, 닿을 수 없는 빛줄기들을 쫓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내게 위안을 주는 존재라면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몇 달이 흘러 나는 결혼했고 나의 배우자는 동물의 털에 심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가 있어(고양이털이 더 심각했다. 붓고 간지럽고 반점에 기침, 재채기, 두드러기와 콧물, 눈물까지) 까미도, 미소도 신혼집으로 데려오지 못했다. 친정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언제나 반겨주는 그 둘을 영상이나 사진에 담아 오면서 내 마음의 헛헛함과 아쉬움을 달래곤 했었다.
검은 털이지만 속털은 적갈색과 고동색이 섞여 햇살 아래 그루밍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신비로웠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을 부르는 것도 알아듣고, 옹알거리며 기분을 표현하던 까미. 속 없이 착한 아이.
그 무렵 동생은 대학교 졸업 후 구직활동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집에서 펫시터를 했는데 당시 시험을 준비하느라 집 밖을 나갈 일이 많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반려묘, 반려견과 같이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짧게는 3~4일, 길게는 반년이 넘게 동생에게 맡겨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동안, 까미와 미소는 까칠하게 대하지 않고 수용적인 태도로 어울렸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복도 그런 복이 어딨을까 싶었다. 오래도록 그 시간이 지속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출산하고 기쁨에 겨워 나의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까미는 생을 마감했다. 딱 2년. 까미가 세상에 머물렀던 시간. 4월. 잔혹한 달.
급성백혈병(혈액암)이었고 동생은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내가 걱정되어 까미가 아프다고만 문자를 했다. 금방 나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까미가 오롯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과 까미의 숨이 넘어갈 때도 가족은 내게 알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게 말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그 모습은 모든 사고를 마비시켰을지도.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그날,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로 들은 첫마디는 너무도 아픈 단어여서 나는 새어 나오는 신음과 함께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던 것만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계속 울었던 것 같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도 갈고 옷도 갈아입혀야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서 닦는 것도 포기하고 그냥 어디라도 떨어지게 내버려 두었다. 베개에 입을 가져다 대고 꺽꺽- 소리를 내면서도 울고 왜?라는 물음 앞에 서슬 퍼런 눈빛으로 위로 눈을 흘기며 원망하면서 울부짖었다. 아기는 옆에서 놀라 자지러지게 울었다.
유전으로 얻은 질병이라는 말, (어미묘가 보균하고 있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는 경우가 있다)그러니까 까미는 태어나면서부터 짧게 살다 갈 운명이었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그때. 밀어내도 기어코 올라와 같이 자던 까미에게, 많이 먹는다고 밥그릇을 뺏긴 까미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그 어떤 걸로도 갚을 수 없게 돼버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나온 그때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귓속이 뻐근해지고 턱 밑이 아릴 정도로 눈물이 차오른다. 너무 그립다. 혼이 나도 마음에 담아두는 법을 모르는 선하고 사랑 많은 까미.
까미야. 내가 [아는] 유일한 검은 고양이.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걸 알려주고 갔네. 꿈에 좀 나와.
도톰한 네 발을 한 곳에 모아 두고 앉아 지그시 바라보던 그 얼굴. 먼지가 살짝 내려앉은 수염과 콧잔등. 수많은 빛깔로 하나의 마음만 전하던 눈동자. 살랑이는 꼬리와 둥그렇게 말린 등. 발바닥의 말랑한 온기. 얕게 뱉는 숨과 함께 가라앉던 볼록한 배, 골골송과 짧은 대답의 울음소리. 너와 내가 맞닿은 시간을 안아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