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쥐띠다.
신년운세를 보는 사람도 아니고 신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지만 내가 태어난 해와 연결된 동물이 무엇인가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은근히 물어보는 사람도 많고)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산다.
쥐를 묘사한 다양한 캐릭터 중에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쥐를 연상했을 때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기보다 특유의 길고 두꺼운 꼬리가 생각나면서 이내 생각을 멈춘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아이가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혔는데(아이들의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소원을 들어주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래도 햄스터는 꼬리가 짧으니까.. 하고 승낙하고 당근마켓에서 햄스터 집과 용품을 구매한 후 깨끗이 세척해서 말려두고 마트로 향했다.
아이가 작은 생명과 같이 사는 첫 경험을 구매로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남편과 둘이 햄스터 분양하는 곳에 방문했다. 드워프 종에 '펄'이라는 털 이름을 가진, 유난히 종종거리는 걸음의 햄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직원이 주의사항과 함께 건네준 작은 상자에 넣어주었고, 조심히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에게 맡겨둔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햄스터를 소개해줬고 아이는 기뻐 계속 춤을 추고 뛰고 신이 나 있었다. 어린이날 선물이기는 했다. 5월에 온 햄스터.
어디서 어떻게 오게 된 건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선물같이 찾아온 햄스터에게서 아이는 눈을 떼지 못했다. 하얀 털에 회색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진, 앞니 두 개가 길쭉하고 뾰족한, 콩알 반쪽만 한 까맣고 윤기 가득한 눈을 가진 햄 씨. 이름은 햄 씨라고 아이가 지어주었다.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 왠지 듣기가 좋았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먹이를 갈구하고 영역표시를 하고, 먹고 자고 놀고 단순한 삶을 사는 녀석이 부러우면서도 길지 않은 수명을 알고 있기에 그와의 이별이 걱정되어 찡하게 코 끝이 아리기도 했던 여러 날들.
성별도 모른다. 개월 수도 직원에게 대충 ~개월 되었을 거라는 말만 들어 확실치도 않았는데 성별을 모른 채로 이름만 부르는 것이 왠지 좋아서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민들레 뿌리를 갉아먹는 걸 좋아하고 밀웜과 코코넛을 간식 중 제일 선호하며 밤마다 쳇바퀴를 규칙적으로 돌리고 남편과 나, 아이의 목소리나 체취를 기억하고 구분하는 것 같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코코넛 껍질로 만든 집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도, 간식 봉지 뜯는 소리에 반쯤 뜬 눈으로 비틀거리며 나오는 햄씨의 모습은 항상 날 웃게 했다. 받은 간식을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여기저기 나름의 방법으로 숨겨 두고, 혼자서 뭐가 그렇게 분주한 지 , 매우 근면 성실한 햄스터였다. 그렇게 사계절을 한 번 지나 새로운 해를 기다리며 즐거운 추억이 쌓여가던 때, 헤어짐이 찾아왔다.
주말 오전, 잠든 나를 남편이 깨우며 말했다. "그날이 왔어."
몸을 일으켜 햄씨를 보러 갔는데 마치 자는 것 같았다. 반려동물과 이별한 경험은 나에게 아픈 기억이기에 최대한 막아보려 했지만 아이와 남편의 끈질긴 염원과 설득에 그 녀석을 들였는데... 개나 고양이와 달리 큰 교감을 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이 관계가 후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하다고 메모장에 적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이별이라니. 함께 한 날이 짧은 시간이라 덜 슬프고, 길다고 더 슬픈 것이 아님을 이미 경험했음에도 슬펐다.
촤르르르르- 쳇바퀴 돌아가는 소리.
턱턱 턱턱턱- 급수대 핥는 소리.
샥샥샥샥샥- 재빠르게 돌아다니는 소리
튜튜 튜튜- 볼에 저장해 둔 해바라기씨 뱉는 소리.
작은 존재가 내는 살아있다는 알림음.
손바닥보다 작고 깃털보다 아주 조금 더 무거운 햄 씨.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지친 마음으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숨통 트일 시간을 주고,
열심히 먹이를 찾느라 엉덩이만 보이고 머리를 굴 속에 파묻는 엉뚱한 모습으로 아이에게 웃음을 주고.
나에게는 추억할 수 있는 글을 쓰게 해 준 햄 씨에게 고맙다.
동생도 가끔 우리 집에 머무를 때마다 너무 귀엽고 제 나름대로 바쁘게 사는 게 기특하고 짠하다며 예뻐해 주고 마음에 담아두고는 했었는데- 부모님 또한 징그럽지 않고 귀엽다며 잘 있냐고 안부를 묻곤 했었는데.
정확히 1년 10개월. 잠 못 이룰 때 내가 하는 투정을 들어주던 작고 보드라운 햄씨는 멀리 떠났다. 영원히 알 수 없을 햄 씨의 생각과 감정을 계속 모를 예정이라 그게 참 미안하고 속상하다.
찍찍.
나야.
내 맘 알지 찍찍? 햄찌별에서는 좀 게으르게 지내라고 찍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