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연-2
바우이야기] 고양이 호두가 떠나고 며칠이나 울고 속상해하던 동생이 다른 반려동물에 대한 마음은 접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동생의 뜻과 별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꽤 먼 거리에 있는 펫샵에서 믿을만한 사람에게 갈색 푸들 한 마리를 분양받아 데려온 아빠를 보고 난 속으로 조금 놀랐었다. 이렇게까지?
후에 아빠가 속상해하는 둘째 딸이 안쓰러워 준비한 서프라이즈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유기견 보호센터나 임시보호, 입양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그런 쪽에 둔감했던 터라 반려동물을 선택하고 만나는 방법이 구매의 형태를 띠었던 것이 지금까지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어설픈 준비로 만난 갈색 푸들 강아지 바우. 그 이름은 전공이던 디자인 수업 중 바우하우스에 관한 것을 배울 때이기도 했고, 만화 '바우와우'에 그 발음이 입에 붙는 느낌이라 동생에게 조금 억지스럽게 권해서 정한 이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바우를 잠이 많은 순둥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순하다'의 반대말이 '힘이 넘친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 과하게 표현해서 바우의 에너지는 난폭함으로 분류해도 무리 없었을 그 어떤 것이었다. 이를테면 파괴 본능 같은.
벽지나 신발, 쿠션과 옷. 질겅거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씹어대고 도움이 된다고 해서 사온 장난감도 얼마 이상 버티지 못해 망가져 못 쓰게 돼버렸다. 인형들은 눈알과 코가 다 뜯겨나가 솜이 터졌고, 망가진 장난감에 흥미를 잃어버린 바우가 자신이 일어서 물어갈 수 있는 높이에 있는 것을 다 물고 뜯어 망쳐 놓았다.
사람인 우리 가족이 바우의 행동을 고쳐보고자 애쓰는 동안, 이미 터줏대감으로 입지가 굳건한 미소는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자세로 바우의 존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으나 이내 자신의 밥그릇에까지 코를 들이밀고 먹어대는 식욕이 왕성한 바우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각자 정해진 밥그릇이 있어 같은 시간 사료를 주면 바우는 눈꺼풀이 다 뒤집혀 쏜살같이 먹어 치운 후 얌전히 식사하고 있는 미소의 밥그릇에 코부터 들이밀어 뺏어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미소가 으르렁 경고하는 소리를 넘어 이를 드러내 물기 전까지. (지독한 녀석.)
두 달 정도 지나 몸집도 제법 커지고 놀자는 건지 서열을 겨뤄보자는 건지 미소에게 자꾸 들러붙는 바우가 나는 마냥 귀엽고 좋지만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은 미소는 바우가 곁에 다가오기만 해도 으르렁거렸고 미소와의 관계뿐 아니라 바우의 배변 문제나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질 않자, 부모님도 서서히 지쳐가셨다.
또 그렇게 바라던, 자신만을 1순위로 바라봐주는 바우를 기대했을 동생도 나름대로 서운함이 있었으리라.
얄궂게도 그 타이밍에 엄마의 지인 중 한 분의 부모님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셨는데 적적해하셔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아빠가 가족에게 물었다. 바우를 보내면 어떻겠냐고.
나는 찬성했고 동생은 반대했다. 결국 반대의 소리가 옅어질 때쯤 바우는 우리 집을 떠나 노부부가 있는 시골집으로 갔다.
전해 듣기로 노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많이 먹어도 구박받지 않고, 작은 실수들은 재롱으로 받아주는 따뜻한 분들이 있어 씩씩하고 활기차게 잘 지내고 있다 했다. 많은 생각이 드는 소식이었다.
바우야. 나도 네 덕분에 많이 웃었어. 정말 왜 저럴까 하는 순간들은 네가 싫기도 했지만 (특히 내 가방을 물어뜯었을 때는 매우 화가 나더라고) 그런 때를 제외하고는 널 좋아했어. 미소가 질투할까 봐 많이 놀아주지 못했지만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날 반겨준 네 진심을 기억해. 너른 품의 가족을 만나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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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이야기] 바우를 다른 가족에게 보내고 얼마간 시간이 흘러, 아빠가 알고 지내던 시골집 아저씨네 가족이 잠시 외국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 집에서 키우던 개를 맡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며 아빠에게 부탁했고, 거절할 수 없었던 아빠는 잘 보살펴 주겠노라고 약속하셨다.(늘 그러하듯 혼자서 결정하심) 그렇게 갈색의 푸들, 초코는 우리 집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겁도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 주인이 걱정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양쪽 눈에 눈물자국이 진하게 남아있는 것만 봐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시골집 아저씨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바우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쯤 맞이하게 된 새로운 인연이 반가움으로 다가오기보다, 좀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처음에 초코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초코는 아빠를 제일 좋아했다.
미소는 어린 녀석이 사라지고, 왠 자기보다 몸집도 크고 껑충껑충 뛰어다녀 정신 사납게 하는 녀석이 왔어? 하는 눈빛으로 초코를 경계했다. 그러나 바우보다 눈치가 있는 초코는 미소가 좋아하는 쿠션이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지켜야 할 선을 지킬 줄 아는 개였다.
둘의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시간은 흘러가고, 간혹 소변을 실수하긴 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는 가운데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생겨났다. 삑삑거리는 소리가 나는 장난감이 문제였다.
초코의 주인이 보내온 장난감 중 유독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공 모양의 장난감을 초코는 좋아했고, 시도 때도 없이 물며 소리를 내는 통에 나는 신경질이 나서 그만 좀 하라고 높은 곳에 그 장난감을 숨겨 두었다. 나는 그때 강아지도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밥도 안 먹고 풀이 잔뜩 죽어서는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모습으로 기운이 없는 것을 보고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후에 엄마가 그 장난감을 꺼내 주시고 초코가 보지 못했던 주인을 만난 것 마냥 기뻐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떨어져 지내는 주인의 마음이 담긴 그 선물을 알아보고 그렇게 아꼈던 것인데, 그 장난감이 사라지니 상실감을 느끼고 울적해졌다는 걸.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몰라준 내가 부끄러웠다.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모든 관심과 집중을 그에게 쏟는 일. 평생에 작은 친구들이 하는 일.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품은 초코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물어오는 대로 한동안 잘 놀아줬던 기억이 난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그 2~3일 동안 변화가 확연히 보일만큼 살이 빠졌었는데 다시 회복하고 부모님께 사랑받다 초코는 해외에서 돌아온 시골집 아저씨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얼마간 초코가 내게 달려와 안길 때 그 묵직했던 발바닥의 무게와 감촉이 떠올라 그립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시원 섭섭의 시원에 가깝긴 했다.
초코야. 낯선 집에 와서 주인과 떨어져 지내느라 고생 많았어. 어느 정도로 정을 줘야 하는지 계산하지 않고 그저 마음을 주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가 되네. 그 시간을 버틴 너는 참 대단한 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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