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물고기들, 그리고 뻐끔이

by 엘리

나와 아빠, 그리고 동생이 태어난 뒤로는 동생도 함께- 그리고 가끔 엄마도, 가족은 주말마다 등산을 했다.

동생이 5~6살이 되기 전까지는 자주 가지 못했지만 대전으로 이사 후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주말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동네 뒷산이나 차를 타고 조금 더 멀리 나가야 오를 수 있는 산으로 갔다.

또 봄과 여름 사이, 바람이 따뜻해지는 초여름이 되면 '지탄'이라는 곳으로, 다슬기가 많이 발견되는 강가 주변에서 캠핑을 했다. 고기를 굽고, 챙겨 온 과일과 과자, 음료수를 펼쳐 놓은 돗자리에 두고 배를 깔고 만화책도 봤다. 그렇게 먹어도 출출해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강가 주변 수풀을 뜯어 동생과 소꿉놀이 같은 것도 하고 놀았다. 바로 눈앞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플라스틱 컵으로 퍼올리기도 하며.


동생이 태어날 무렵, 경주에 살 때 산에 가면 계곡물에, 강가에 가면 강기슭에 물고기들이 항상 눈앞에서 왔다 갔다 헤엄치고 있었다. 두 손을 살짝 담그고 건져 올리려 하면 물에 소금 녹듯 어디론가 흩어지고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어 구경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일이 반복되던 날들.


어느 날 집 안에 작은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수조 같은 것을 구해온 아빠가(공기장치도 있는) 그곳에는 민물고기가 어울린다며 6마리 정도를 계곡에서 잡아오셨다.

이때는 참새의 교훈이 있기 전이라(자연에 있던 동식물은 그 자리에 두고 오는 것이 옳다) 나는 뭐라 말도 못 하고 그 재빠른 물고기를 잡아온 아빠가 신기했고, 책이나 방송으로 보던 어항 속 물고기와는 생김새가 다른 그 물고기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비슷한 색깔과 무늬인 듯 보이나 크기나 몸의 모양이 아주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다. 밤이 되면 어두워 자세히 관찰할 수 없었지만 한 자리에 가만히 떠 있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환경이 달라졌는데 잘 살 수 있을까 싶어 나는 아빠가 중앙시장에서 구매한 물고기 밥이 계곡에서 살던 물고기들에게 맞지 않으면 어쩌냐고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 먹을 수 있는 것이니 문제 될 것 없다고 답이 돌아왔다. 아빠는 자주 보던 수석 잡지와 낚시책, 수족관 관련 자료를 보시고 수질과 조건, 수중 상태도 전문가처럼 잘 맞춰보려고 노력했고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게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나는 구경꾼모드가 되어 수조 근처에 자주 머물렀다.


물레방아 장치의 원리는 모르겠으나 한 바퀴 돌아 물이 떨어질 때 생기는 공기 방울들 주위로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는데 마치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 같았다. 참 귀여웠다.

또 먹이통을 열어 톡톡 손으로 몇 번 두드리면 흩어져 있다가도 몰려들어 입을 벌렸다. 물과 같이 흡입하듯 빨아들이고는 다시 헤엄쳐 수조장식품과 돌들 사이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 움직임을 보는 게 좋았다.

수영할 수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 계곡물에 빠진 기억으로 물공포증이 심해 수영을 못하는데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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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년 정도 같이 지내다 매번 물도 갈아줘야 하고 신경 쓸 것이 많아진 아빠는 다시 원래 있던 곳에 물고기들을 풀어주고 수조도 정리하셨다. 한동안 나는 수조가 있던 자리를 일부러 피했다.

사람이 주던 먹이에 길들여진 물고기들은 잘 적응했을까? 물고기들아. 너희들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그 소리가 날 편안하게 만들어줬어. 너무 고맙게 생각해. 왔던 그대로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아서 떠나 줘서.


그로부터 꽤 오랜 세월이 흘러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어항 꾸미기 키트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받게 된다. 원치 않는 키우기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공기장치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종류의 물고기를 넣고 어항을 꾸미고 그 속에 넣어 주었는데 그 물고기 이름이 "뻐끔이"다.

내 눈에는 유난히 입이 다른 물고기들보다 더 크고 뻐끔거려서 붙여준 이름인데 금붕어나 구피가 아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생소한 종이었다. 생김새는 말린 멸치 중에 작은 종류의 어떤 것 같고 가로로 검은 줄이 두 개 있었다. 식성이 좋고 변도 그만큼 많이 쌌다.

2일 정도 지나면 어항 안쪽에 미끈한 덩이들을 남겨둬서 치우면서 내 잔소리를 많이 들었던 뻐끔이.


취향을 알 수도 없고 그런 것에 관심도 없어 보였지만 색 모래와 자갈을 사서 꾸며주고 모형 나뭇가지 같은 것도 넣어주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좋아하는 듯했다.

하늘거리는 풀 주변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작은 모래알들을 주둥이로 뿜었다 뱉었다 하는 모습이 뭔가 재밌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를 숨길 수 있는 공간은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모래와 물, 뻐끔이만 있던 때보다 채워진 느낌이었다.

아이도 먹이를 주고 뻐끔이를 관찰하며 신기해했고, 어디 여행을 가게 되면 동생에게 부탁해 먹이를 챙겨달라 했다. 겉으로 표시내진 않았지만 뻐끔이를 아끼며 일상을 보냈는데 1~2년이라고 했던 뻐끔이의 수명이 1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끝이 났다.

가만히 떠 있는 게 아니라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알았다. 떠났구나..

물갈이할 때 새 물에 담아 옮겨줘야 할 때도 만져보지 않았는데- 이런 순간에야 만져볼 수 있구나 싶었다.


뻐끔아. 혼자서 씩씩하게 작은 어항에서 지내는 것 어땠니? 가끔 굴절되어 보이는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진 않았어? 아주 조그마한 비늘이 헤엄칠 때 빛에 반사되던 순간이 얼마나 예뻤는지 넌 알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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