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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May 09. 2024

동굴

“yo~ 브라더 뭐해?”     

군대 선임이자 고등학교 후배인 친구의 전화다.     


결혼을 앞둔 녀석은 밤이면 심란한 마음에 짧게는 10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해왔다.


“축가는 정했는데 내 목소리에 맞는 mr이 없더라고. 또 우리 뮤지션 형이 있는데 도움 좀 청할까해서 전화했지”

   

축가 준비가 막막했던 녀석에게 개인레슨과 학원을 추천해주었고 혼자 차에서 이런저런 노래를 부르더니 이젠 정했나 보다. 말이야 딴따라지 mr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거절을 했지만 이야길 들어보니 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요새는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다. 사용하는 시퀀스와 몇가지 프로그램을 돌려보며 만들어 갔다. 그러다 문득, 이 노래를 어디서 들었더라 생각에 잠겼다. 아, 마지막 공연 때 하려던 곡이었구나. 당시엔 이 노래 가사가 너무 과하다 싶어 콘티에서 뺐던 노래였다. 작업을 하며 공연을 준비하던 일, 공연을 하던 당일, 공연 후의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하루 이틀 지나 세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

     

고향에 내려가 녀석을 1년 만에 만나던 날이었다.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아 국밥을 먹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열차에 오르기 30분 전쯤, 쭈뼛쭈뼛하던 녀석의 모습에 ‘무슨 할 말 있어?’라고 묻자 ‘형 나 결혼해’라고 이야길 한다. 그러면서 ‘형한테는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 만날 때까지 전화로도 이야기 안 하고 기다렸어’라는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과 미안함, 동시에 부끄러움이 물밀 듯 다가왔다. 이 말을 하려고 1년 가까이 기다리다니. 한 시름 놓였다는 녀석의 표정에 부끄러웠다. ‘청첩장 나오면 형한테는 직접 전하러 여자친구랑 올라갈게’. 열차가 도착했다.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둔다는 건 어떤 마음인가. 창밖으로 손 흔드는 녀석을 뒤로한 채 한동안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올해 2월. 두 사람이 청첩장을 전해주러 와주었다. 카페에서 이야길 나누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는지, 연애하면서 생긴 에피소드, 결혼 준비 과정 이야길 들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질 무렵, 녀석의 여자친구의 모습에 어느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이 떠오른 뒤 먹먹한 마음이 들었지만 멀리까지 와준 두 사람에게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이 올라오는 걸 막으려고 두 사람에게 작업실로 가자고 제안했다. 형체는 없지만 두 사람에게 드럼 연주를 선물했다. 

     


결혼식 전날 밤. 녀석을 만나 잠시 동네에서 산책을 했다. 잔뜩 상기된 얼굴과 심란한 마음으로 ‘형, 진짜 나 어떡하지?’라길래 서로 조금 깊은 이야길 나누었다. ‘뭘 어째, 살아야지. 너 잘하잖아’라는 말 밖에 못 해주었다. 녀석의 결혼식은 정말 소박했다. 동시에 멋졌다. 무대를 직접 만들어 온 두 사람의 과정이 스쳐 갔다. 진심으로 축하해준다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결혼식 동안 지난 과거, 녀석이 보여준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은 나보다 어른스러운 친구다. 여자친구를 품어 주고, 감당해보려는 모습들, 사랑해주려는 모습들을 곁에서 여러 차례 보아왔다. 그럴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던 때도 떠올려졌다.      


식이 끝날때 즈음 알게 됐다.

카페에서 가슴이 먹먹해진 이유를. 

 

.     


어두운 동굴이었다.

꼬마 하나가 다리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소년이 얼굴을 들었다. 

소년 자신이었다. 

녀석은 소스라칠 정도로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쳤다.

다시 돌아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마주 보았다.     

여전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시커먼 공간이다.

  

소년은 도망가고 돌아오길 반복하다,

어느새 그 울움이 궁금해졌다.     

다시 거울로 다가간다.


맞은 편에 비친 나에게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거울이 깨졌다.

울음의 정체를 마주했다.  

   

한 소녀가 있었다.


움크려 울던 건 소년이 아니라

소녀였다.

울어야 했던 건 내가 아니라

소녀였다.


.

     

진정한 추억은 마음에 남는 걸 넘어 삶이 되어 버린다. 원룸(동굴)에서 혼자 울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봄이면 첫 데이트 때 고심하여 고른 옷을 사진으로 보낸 소녀가 생각난다. 잠이 안 왔을, 눈만 감으면 무서웠을 소녀의 마음이 내 몸을 감싼다. 후회만이 아니다.     


친구 커플을 보며 

먹먹한 마음의 정체를 떠올린다.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


동굴 한쪽에 바깥세상이 보인다.

천천히 걷다 보니, 또 다른 거울들이 있다.

오롯이 나만 보이는 저 거울 뒤에

소녀 소년들이 있다.


동굴을 나왔다.

거울 뒤 소녀는 어디로 갈지 모른다.

방향이 엇갈릴 지도,

같은 방향이어도 시간이 엇갈릴 수도 있다.


소년은 느리지만 계속 걷는다.

울음 뒤에 미소짓던 소녀를 기억하며

소녀가 좋아하던 프리지아를 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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