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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구 Jan 02. 2024

어떤 울음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얼굴

 "헤엄치는 건 하늘을 나는 것 다음으로 좋은 거야." 그는 사라에게 그것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하늘을 날아 본 적 있어?"

 "아직."

.

.

.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진. 나는 어제 쓴 글의 여운을 느끼고 있어. 아무래도 오늘은 진에 대해 써야 하는 날인가 봐. 어제는 애인과 수영에 대해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당신도 생각했어.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하는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 당신은 어떤 웃음을 보여줄까. 한참 상상해 봤는데, 그게 잘 안 됐어.


내가 만든 장면에는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는 진의 얼굴이 보여.  얼굴을 사용하웃는 당신 위로 반사되는 빛도 함께 보았어. 당신은 수영복을 입었는데, 뱃살을 마구 가리는 거야. 당신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해. '나는 이런  부끄러워.'



엄마, 엄마는 부끄러울 땐 어떤 웃음을 지어? 밤새 상상 속의 당신 얼굴을 이리저리 주물러 보았는데, 그것도 잘 안 됐어.


그다음으로는 내가 엄마 등에 선크림을 발라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엄마의 부드러운 배에도 발라주려는데, 또 그 웃음을 짓는 거야. 배는 만지지 말라고, 장난치지 말라고 웃는 당신이 행복해 보여서 나는 울음이 났어.

그리고 이제는 당신이 내 등에 선크림을 발라줄 차례가 되었는데, 당신은 역시나 웃으면서 내 뒤에서 참새처럼 얘기해. 등에 털이 많다는 둥, 이렇게 작은 몸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 거냐는 둥, 밥을 안 먹어서 그런다는 둥, 그러니까 서울에서 내려와서 엄마랑 같이 살자는 둥 그런 말들. 내가 지금보다 많이 작았을 때, 등을 밀어주며 당신은 곧잘 그랬잖아. 정말, 당신은 어떻게 웃고 있을까? 나는 또 울음이 났어. 어떤 울음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얼굴이 있어서.

 

엄마, 엄마는 지금도 물이 무서워? 물이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경험이 있다고 얘기했던걸 기억해. 아주 아주 짧게 얘기했었어. 그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그런 미소를 띨 수 있는 거야? 나도 당신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내 안에도 그런 강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을 닮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여전히 무섭다면, 그곳에 있는 한 언제까지나 손을 꼭 잡고 있을게.


수면 아래는 아름다운 것들만 존재해. 수면 위의 괴로운 것들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찬란한 것들이 존재해. 나는 그것들 속으로 진을 데려가고 싶어.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을 진에게 보여주고 싶어.


이 글에서 우리는 한 여름의 스페인 수면 아래를 마구 헤엄치고 당신은 마구 웃고 서로의 등에 선크림을 발라주고 나는 당신에게 무섭지 않은 것에 대해 가르쳤어. 물속을 보는 법을 알려줬어. 자유롭게 표류하는 법을 알려줬어. 매번 어린 나에게 당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나도 당신에게 아름다운 것을 알려주고 싶어.


그 기억으로 돌아갈 때, 눈을 감고 숨을 참고 바닷속을 공들여 복원할 때 말이야. 아마 한동안은 조금 웃고 그다음엔 많이 울고 그러다가 눈을 뜨면 나는 행복할 거야.



수면 아래 당신의 웃음은 어떨까.

엄마와 그곳에 가고 싶어.



-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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