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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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타비아 버틀러, <야생종>
자기 스스로의 신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한 장면을 떠올렸어. 그 장면에는 사과나무 밑에 누워 입을 쩍 벌리고 언제 떨어질지 모를 행운을 기다리는 내가 있어. 그리곤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어. 매일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냄새나는 비료를 만들고 물을 주는 사람들. 말미에는 자기 만의 사과나무를 경작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리곤 또다시 나의 모습을 떠올렸어. 부끄럽고 가여워. 나의 혼은 나라는 정신을 택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까. 너도 그럴까.
저번에 내가 말했던 이슬아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중 '아침이면 일어나고 싶은 생을 네가 살게 되기를'이라는 구절말이야, 인용한 구절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 눈을 뜨고 싶은 내일을 위해선 일단 아주 현실적인 일부터 해치워야 하잖아. 가령, 세탁한 지 얼마 안 된 보드라운 이불을 준비하는 것. 묵혀둔 쓰레기를 버리고 묵은 때를 청소하는 것. 환기시키는 것. 공들여 샤워하는 것. 차를 우리는 것. 그리고 나의 내일을 나보다도 바라는 사람이 써준 편지를 읽는 것. 이런 것들이 살고 싶은 매일을 만드는 과정이자,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는 일종의 의식이겠지. 스스로의 행운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나는 아직 나에게 내가 너무 작아서 이 글을 굳은 다짐으로 끝내지 못하겠어. 나의 사과나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너의 얼굴이 떠올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