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어떤 문장들은 멋이 있다. 하지만 그 문장이 내가 쓴 문장은 아닐 것이다. 나는 서평가, 다른 이들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내 서평은 한 권의 책이 아닌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쓰는 동안 다른 이들이 쓴 멋진 문장들을 강탈하고 때때로 훼손하며 나는 어떤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
.
.
-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사실 나는 도둑이다.
아직은 미약한 소매치기에 가깝지만 훗날 대도주구로 불리게 될 수 있으면 하는 작은 소망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글로 한 푼의 돈도 벌고 있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직업을 설명할 때는 다소 역겹고 부끄러운 어체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여운)' 한다. 차마 사람들에게 '작가'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나는 작가다. 왜냐하면 그 역겨움과 부끄러움 속에는 스스로에 대한 인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적확한 이유가 있을까? 해서, 나에게 한 푼의 고료과 하루의 마감일이라는 인정이 생긴다면 곧바로 '작가'라고 소개할 작정이다.
나는 도둑질로써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미 몇몇 독자들은 나의 글에 은근히 숨겨진 전리품들을 보고 눈치를 챘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 행위를 꽤 좋아했다. 동경하는 것을 미흡한 내 작품에 녹여 넣은 충만감과 죄책감으로 나는 은근한 희열을 느꼈다. 당연하게도 책을 읽는 행위의 가장 큰 목적은 문장 소매치기였다.
내 것인 문장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목이 말라 깬 새벽에 물을 마시고 침대에 돌아가려고 휙 돌아설 때처럼. 지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순간처럼. 애인과 안녕을 고한 뒤 찾아오는 적막처럼. 갑자기 나는 혼란스러웠고 깊숙이 수치스러웠다.
최근에 쓴 글들은 서평이라기엔 이기적이게 무심할뿐더러 서평가라면 응당 박학다식해야 할 텐데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멍청하다. 소매치기 '하고 싶었던 것들'을 진열해서 그에 대한 단상을 써놓았으니 이것들은 전시회에 가깝겠다.
금정연 작가의 글을 보며 나는 도둑으로서, 글 쓰는 사람으로서, 머지않을 작가로서, 전시회의 불을 밝힌다. 유독 오늘 하루가 수치스럽지 않은 것은 당당히 강탈해 온 그의 문장들 때문일 것이다.
송구스러움과 고마움을 전하며,
대도주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