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봄이다. 봄이 되면 의뢰인들이 많아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봄을 두려워한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봄은 우울을 더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자신만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커지는 것이다. 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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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드디어 며칠이고 나가지 않아도 괴롭지 않은 시기가 왔어. 하루가 멀다 하고 한파주의보가 발령되는 시기. 마음껏 움츠러들 수 있는 시기. 도저히 나갈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가 생기는 시기. 가령, 감기나 추위 같은 것. 또 어쩔 수 없는 일로 밖을 나갈 때,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꽁꽁 싸매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는 편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는 시기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