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다는 웃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나는 한 장소에 묶이는 걸 싫어해요. 원할 때 어디든 갈 수 있고, 마음껏 사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냐."
"간단한 일이 아니죠. 맞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내 마음은 정해져 있어요. 나는 늘 자유롭고 싶어요.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직업으로서 부엌에 틀어박히고 싶지는 않아요, 그랬다가는 곧 누군가를 증오하게 될 테니까요."
(…)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삶은 살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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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해서, 나도 백수다. 이전글의 연장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백수이면서 도둑이면서 글 쓰는 사람이다.
각각 모두 자신의 손으로 선택한 나의 자아들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단지 두 문장을 썼을 뿐인데,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미래의 동반자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송구스러운 나열일까나. 이 조금에도 주절주절하며 눈치를 보는 자아비판적이고 자의식 과잉인 면을 보아하니 나는 백수면서 도둑이면서 글 쓰면서, 찐따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회사원이면서 월급좀도둑이면서 상습 번아웃 쟁이면서 이해심 바닥이었던 옛날의 자아보다 찐따인 지금이 나는 좋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던 헌담, 짜증, 우울. 그런 역겨운 것들이 입에서 쏟아지면 나는 매번 슬퍼졌다. 따박따박 들어오던 적지만 든든한 안정감과 명함 한 장짜리의 소속감은 그다지 기쁘게 하지 못했고 끝내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 여전히 슬픈 채로 그 자아의 막이 내렸다. 눈물 나게 최선이었던 몇 년은, 인생이란 연극의 한 막이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의 막에선 나는 많이 자유스럽다. 괴로운 마음에 몸을 망가트리기도 하고 이불을 둘러매고 무기력의 끝을 볼 작정을 하기도 하고 선을 넘나들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쓰지 않기도 하고 그리고, 때때로 충만하다. 충만함에 쌓여 둥둥 표류할 때면 잘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간간이 생기는 그런 류의 만족감 안에서 별무리 없이 나는 살아간다. 약간의 송구스러움도 나는 괜찮다.
별일 없이 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