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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구 Jan 18. 2024

여름까지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했어


 “헤엄치는 건 하늘을 나는 것 다음으로 좋은 거야.”

그는 사라에게 그것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하늘을 날아 본 적 있어?”

 “아직.”

.

.

.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여름까지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했어.


오늘의 동이 트기 전에 이곳의 바닷가를 거닐다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동트기 직전의 새벽을 너는 알까. 밤이 익을 대로 익어버린 그 시기에는 정말로 어두워. 나는 그렇게 어두운 밤을 뚫고 바닷가로 걸어갔어. 잠도 자지 못하고 책도 읽지 못하고 글도 쓰지 못할 바엔 더 못 쓰게 되어버리자는 마음으로 그 안에 뛰어든 거야. 옻을 덧댄 것 같은 검은 무대에서 내가 첫째로 무얼 보았는지 아니? 술, 눈빛, 일, 국밥, 삼춘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 방언 그리고 뉴스, 이를테면 모 정치인의 횡령 사건이랄지 또는 KTX에서 어떤 이유로 1만 원 남짓한 금액을 환급해 준다든지 그런 얘기 말이야. 술, 눈빛, 일, 국밥, 삼춘, 제주 방언에 속한 대다수는 전자보다 후자에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어. 그 이름 모를 정치인이 훔친 액수는 아마도 본인들이 매일같이 새벽부터 일어나 노동한 것의 평생의 평생을 모아도 모자랄 만큼의 큰 금액인일텐데 말이야. 물론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뿐, 너에게 더 전할 말은 없어.


그리고 나와서 입에 남은 음식 냄새를 씻어내기 위해 호올스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어. 여전히 같은 시간에 머무는 듯한 어둠이었어. 적정 기온과 바람, 생경한 새벽 냄새 안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나는 바닷가로 걸어갔어. 사탕을 혀로 굴리기 시작한 지 1분이나 되었을까, 나는 또 너에게 말해주기로 작정할법한 장면을 봤어. 그 장면은 이렇게 시작해. 술집에서 커플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등장으로. 흑백의 스크린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등장인물처럼 말이야. 말 그대로 튀어나왔어. 야심한 시각과 가게 창 너머로 보이는 소주병의 개수 그리고 그들의 밀착 정도를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하며, 모텔 입구에서부터 그 둘 사이에 피어오를 야한 어색함을 상상했어. 근데 아니나 다를까 나의 상상과 꼭 맞게 그들이 그곳에 들어간 거야. 재밌는 장면이었어.


후로는 자잘한 배경들이 스쳐 지나가. 그 깊은 새벽에 알파문고의 불을 켜는 상인(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야. 그 새벽에 문구점을 연다니. 세상엔 그런 성실함도 있는 건가 봐)과 으스스한 점집, 을씨년스러운 유흥주점 등등. 그런 것들을 스쳐보내며 겨우 바닷가에 다다랐을 때,



나는 여름까지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했어.



어둠에서 그렇게나 맑은 바닷물은 정말이지 처음이었으니까. 당장 뛰어들어 마음껏 표류하고 수면 아래를 쳐다보고 물고기를 따라가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에게 수영을 알려줘야 하니까. 그렇게나 아름다움 것에 담겨 있는 너의 맨 몸을 상상하자마자, 나는 정말 살아야겠다- 했어. 흔한 다짐이 아닌 마치 전장의 병사가 하는 것 같은 굳은 결의였어.


내가  ‘짙은 새벽이라는 영화는  바닷물을 찬찬히 조명하며 막을 내렸어.  영화에서 주인공을 뽑아야 한다면 확실히 너야. 심지어  영화에서 그저 단역이었던 그들이 누군가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또한 그들의 배경일 것을 생각하며, 나는 외롭지 않은 마음으로 겨울과 봄을 지낼  있을 거야.


여름 속의 너를 생각하며, 아주 맑은 것에서 표류하는 너의 동그란 웃음을 떠올리며, 나를 살게 하는 여름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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