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여행

여행과 포기

by 정주구



다음 날 밤
나는 격렬한 정서적 멀미를 느꼈다.


그 후로, 서울의 내 방에 돌아오기까지의
기억도 기록도 더 이상 없었다.


파괴적인 햇살과
동화 속 마을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
그리고 그것들을 조각조각 내는 철창의 조화란.



세비야의 골목


세비야에 당도하고 보니

파괴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일광이 내리쬐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 순간, 나의 여행은 멈춰버렸다.




바르셀로나로부터 남서부 방향으로 약 6시간 떨어진 곳에 세비야가 있다. 기차, 비행기, 버스 등 여러 가지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이동시간 또한 달라진다. 우리는 스페인 대표기차인 렌페를 이용했다. 오전 8시 35분에 출발하여 오후 2시 10분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으나, 시간약속에 대한 유럽의 명성을 저버리지 않고 30분 연착하여 세비야 역에 도착했다.


천천히 흘러가는 초록이 인상적이었다. 유럽의 초록은 한국의 그것과는 색감이 다르다. 채도가 살짝 낮으면서도 생동감은 잃지 않았다. 그런 이국적인 초록은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안정시켜 준다. 높은 초록, 낮은 초록, 띄엄띄엄 떨어진 초록, 오종종한 초록들과 이따금씩 오렌지색 지붕이 지나갔다. 주위 사람들은 차창에 어떤 영화와 같은 흥미진진한 무언가가 상영되는 것으로 오해를 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다. 무대막이 오르는 것과 내리는 것을 6시간 동안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렇게 봐 놓고도, 그 안정적인 색감을 가진 긴-공연이 때때로 생각난다. 그립다는 말이다.

공연은 나를 안정시키면서도 동시에, 나를 흥분시켰다. 세비야에 가까워질수록 미지의 장소에 대한 기대는 점점 증폭되었다. 오후 2시 40분쯤, 세비야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도심으로 들어갔다. 살인적인 햇빛은 파스텔톤의 건물들을 자랑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안드레센의 어떤 동화가 떠올려질 듯한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




살인적인 햇빛과 파스텔톤 건물들은 곧, 잔혹동화로 전락해 버렸다.


숙소까지는 택시로 약 15분 걸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비야의 색감과 건물들의 귀여움, 또 숙소에서의 일정 따위 같은 것들을 대강 얘기했다. 긴장이 풀릴 때,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짐을 풀고 나가서 물을 비롯한 간단한 식료품을 사 오겠다고 말했다. 고모부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내가 여행하는 법을 모르거나 영어를 잘 못해서 널 데려온 게 아니야. 고모를 가장 잘 보필할 수 있는 사람이 너라고 생각해서 데려온 거야, 알아들어?' 이런 식이었다. 마지막의 '알아들어?'를 두 번 반복하셨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모를 포함한 어른 두 분을 나름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라 그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아직 여행 2일 차인데, 그럼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하나의 '잘못'을 찾아냈다. 그들의 낮잠 시간에 합류하지 않고, 혼자의 시간을 보낸 어제의 2시간이었다. 내가 잘못한 건 나를 숨 쉬게 한 그 2시간.

앞으로는 숙소 앞 식료품 가게도 혼자 가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참 막막해졌다. 물론 사촌어른의 입장으로서 이십 대 중반의 조카가 낯선 이국의 땅을 혼자 활보하게 두는 건 걱정스러울 수 있다. 그 걱정도 이해하지만은, '알아들어?'라는 말에서 오는 수치스러움이 그 이해를 한 없이 작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곤 어제와 같이 낮잠 시간을 가졌다. 창살 사이로 세비야의 찬란한 색감이 보였다. 파괴적인 햇살과 동화 속 마을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 그리고 그것들을 조각조각 내는 철창의 조화란.

직사각형으로 나눠진 그 모습을 해가 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잔혹동화 속 한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진정한 여행을 느낀 대가로써, 가장 아름다운 곳의 그늘로 귀양 온 모양새였다.




여행을 포기했다.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맛있는 낮잠타임을 가지는 어른들과, 창살사이로 언뜻 보이는 세비야의 아득함이 한데 뭉쳐졌고 그 무거운 공기에 나는 괴로웠기 때문이다. 몇 시간을 조용히 괴로워하다가 이내 체념했다. 무감해지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여행경비를 모두 대준 상황에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걱정까지 시킨다는 건 아주 나쁜 일일 것이다, 암-.

포기하면 그만이다. 이 괴로움도, 갈등도 모두 놓아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아주 간단하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다음 날 밤 나는 격렬한 정서적 멀미를 느꼈다.

그 후로, 서울의 내 방에 돌아오기까지 기억도 기록도 더 이상 없었다.




밤에 바라본 창살 밖
아기자기한 색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