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기록과 순간의 밸런스
기록을 위한 여행이 되어버리면
정작 여행에서의 '진짜' 순간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나의 살갗을 뚫고 들어가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태엽을
비출 수 있을 정도의
아주 폭력적인 햇빛이었다.
<레이니데이인뉴욕>의 티모시에서 곧,
<로맨틱홀리데이>의 케이트윈슬렛이 되어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니 햇빛이 나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비에 축축하게 젖어있던 골목과 나는, 격렬한 햇살 속에서 마치 건조기에 돌려진 것처럼 구석구석 뽀송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왜인지, 그만 숙소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비가 오다가 이제 날씨가 좋아져 버렸네! 슬슬 해가 더 좋아지기 전에 얼른 숙소로 돌아가자!' 하는 것처럼 기묘하게 느껴졌다. 아마 일찍 일어난 터일 것이다.
그냥 외면하고 돌아가기엔 참을 수 없이 격렬한 햇빛이었다. 나의 살갗을 뚫고 들어가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태엽을 비출 수 있을 정도의 아주 폭력적인 햇빛이었다.
마치 어떤 이단아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을 보내다가 마지못해 그들은, 나만의 시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허락'해주었다. 허락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 정말 '허락'을 구했어야 하는 상황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지만, 타인과 함께하는 여행으로써 '동의'를 해주었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런 낯선 환경에 어린(그들에게는) 조카를 길바닥에 두고 가는 건 친척어른으로써, 꽤 신경 쓰일 수 있다는 점은 사실 그때는 몰랐다. 알았어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존중할 수 있겠다.
그렇게 쟁취해 낸 낯선 햇빛, 색감, 바람, 사람들 안에서, 나는 드디어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그 거대한 외로움 안에서 나는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자유로움은 나를 <레이니데이인뉴욕>의 티모시에서 곧, <로맨틱홀리데이>의 케이트 윈슬렛이 되게 해 주었다. 영국에서 시리운 시간을 보내다가 한순간에 훌쩍 엘에이로 떠나온 케이트가 생각났다. 엘에이의 선샤인 바이브를 온전히 만끽하며 격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총총 뛰어다니던 그녀의 모습을, 내가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겪는 그 순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원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기록 도구들을 사용하여 담아냈다. 거의 모든 발자국마다 기록을 했던 것 같다. 또, 거의 애원에 가까운 기도도 했다. 그 노력이 안쓰럽게도, 그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절대로' 잊게 된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시선에 따라 담기는 것들을 모두 집에 가져가기 위해 용을 썼지만, 움켜쥐면 쥘수록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들을 보는 듯했다. 곧, 필멸할 무언가를 잡아두는 행위에 회의감이 느껴졌다.
다 내려놓고 가볍게 길을 걸어보았다. 사진기와 에어팟과 지도와 긴장을 모두 주머니에 넣어두고 그냥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음미했다. 그때 나는 정말로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상실될 순간을 잡아두기 위해 정작 '진짜' 순간을 포기했던 것이다. 기록과 여행의 관계는 실로 복잡하다. 기록을 위한 여행이 되어버리면 정작 여행에서의 '진짜' 순간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 둘 사이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보고 싶다.
단 2시간, 바르셀로나의 격렬한 햇빛에 흠뻑 젖으며 되뇌었던 말이 기억난다. '제발 기억해 줘 이 순간'.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인데도 왠지 글로 쓴 일기들보다, 사진보다, 영상보다도 지금의 나에게 의미 있는 기록이 되었다. 또 다른 기록의 도구를 발견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다짐을 했을 때의 그 하늘색이 생각나는 걸 보면, 그건 아마 감각 너머의 무엇을 기록할 수 있는 꽤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
나의 깊숙한 곳까지 구석구석 비추던,
그 폭력적인 빛을 나는 잃고 싶지 않다.